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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호

황우석 교수님의 연구에 대하여
  글·이장선 (안산장애인교회 담임 목사)
제 차에 교회 여 집사님이 타셨습니다. 함께 병원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쩌다 황우석 교수님 얘기가 나왔습니다. 한참 매스컴에서 이야기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대화였습니다.

‘목사님, 황우석 교수라는 분이 정말 불치병도 고칠까요?’

‘글쎄요.’

‘우리 ○○가 TV에서 보곤 이런 말을 합니다.’

‘무슨 말을요?’

‘실험대상자를 찾으면 자기가 실험대상자가 되었으면 좋겠답니다.’

‘실험대상자요?’

‘불치병을 고치려면 불치병 환자가 있어야 하니까 실험대상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요?’

우리 여 집사님은 54세이신데 아들 중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 있습니다.
27살이던가……. 청년인데 말과 행동이 아무래도 어눌하고 불편합니다.

‘○○가 그래요?’

‘예, 황우석 교수님한테 전화를 한다나 뭐래나…….’

‘하하하……. 한 번 해보라고 그러시죠…….’

‘강원래 같은 사람을 먼저 고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전화는 안하더라구요.’

‘하하하, 강원래라면 가수요?’

‘예…….’

‘왜 그 사람을 먼저 고칠 거라고 생각한데요?’

‘그 사람이 유명하잖아요.’

‘유명하면 먼저 고쳐져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정말 실험대상자를 모집한다면……. 그 때 가서 생각해 보라고 그러세요. 잘 하면 우리 ○○ 비장애인 되겠네……. 하하하…….’

‘아유, 그렇게만 된다면야…….’
그리고 곧 우리의 대화는 다른 주제로 옮겨갔습니다. 제 옆 좌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집사님의 딸이 빙긋이 웃습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저는 압니다.

자식이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그 부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니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는 장애아 특수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12세 미만의 중증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지요. 이 어린이들 중 한 아이의 어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아이 말고 자녀가 또 있으십니까?’

‘아뇨…….’

‘그럼 이 아이 하나 두셨어요?’

‘예’
7-8세나 되었을까.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남자 아이 한 명만 두었다고 하십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왜 더 안 낳으셨어요?’

‘혹시나…….’
저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아를 가지면 교육, 치료, 재활, 양육…….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부모가 져야 합니다. 교육기관과 재활을 돕는 기관이 있지만, 현실은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는 자전거 같습니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자라면 자란대로, 그 부모님의 사후 남겨지는 삶까지도 걱정을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마 우리 여 집사님도 장애를 가진 아들을 생각하며 속상한 나머지 제게 말을 걸었을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님의 연구를 이야기 하며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제게 확인하고 싶으셨겠지요.

그러나 장애를 가진 당사자는 더 힘듭니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몹시도 괴로운 일입니다. 마음은 움직이는데 몸은 안 움직입니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고민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교육, 취업, 결혼……. 그 어느 것 하나 걸리지 않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들 마음에서 늘 밀려나야 하니 힘들지 않겠습니까.

수년 전에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혹시 치료를 받고 나을 수 있다면 목사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그 때 이렇게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싫어. 나도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야. 작품이 다 똑같을 필요가 있을까? 나는 나야. 안 고치고 살란다.’

멋지죠? 제가 생각해도 멋져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고칠 랍니다. 안 멋져도 괜찮습니다. 단 하루라도 아니 단 1분 1초만이라도 목발이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걸어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마음이지요.

장애를 가지고도 세상을 훌륭히 산분들이 계십니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누가 한 말인지 아시나요? 생후 19개월에 시각 청각 언어 장애를 입은 헬렌 켈러 여사가 한 말입니다. 헬렌 켈러는 3중의 장애를 가지고도 하버드 래드클리프 대학을 나오고 세계 각국을 다니며 장애인들의 교육과 사회 시설의 개선을 위해 힘썼던 훌륭한 분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큰 기쁨은 당신은 못해낸다고 세상에서 말한 것을 당신이 해냈을 때이다.’

이 말은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루즈벨트가 한 말입니다. 미국 마운틴 러쉬모어에 18m 크기로 그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분입니다. 그만큼 훌륭했다는 뜻이겠지요. 휠체어를 타고도 미국을 이끌었던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스티븐 호킹, 악성 베토벤…….
불편한 몸을 가지고 세계사에 그 이름을 빛낸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얼마나 되나요?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합니다. 생각나는 분들을 말하라면 몇 명이나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만큼 장애를 가지고 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님의 연구에 대해 여러 생각들이 공존하는 듯합니다. 제 생각에도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불치병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이에 장애인들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좋은 연구가 되어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결과만을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움직이지 않았던 팔 다리가 움직이고,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음성이 조합되지 않았는데 조합이 되고……. 너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더 귀히 보고 싶습니다. 인간의 존엄함을 깨뜨리고, 사람의 사람됨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불치병으로부터 자유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는 또 다른 구속이 될 터이니까요.

미래 어느 순간엔 불치병에 대한 치료가 이루어지겠죠? 장애인들의 움직이지 않는 몸의 내용들도 움직이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인간의 존엄함과 존귀함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귀중히 여겨지면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과학을 기대합니다.

정당한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정당하지 못한 과정으로 장애를 버려야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부끄럽기에 포기하겠습니다.

‘○○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정당한 장애를 가지고 사는, 네 삶은 고쳐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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