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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호

죽음,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 호스피스 병동에서
  글·윤찬우 (이화여대 동대문병원 원목)


창조 기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그리고 최초의 인류에게 인간으로서 하여야 할 과제와 지켜야 할 명령을 주셨다. 인간으로서 하여야 할 과제는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켜야 할 명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이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에 관계가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의식하게 되었고 그것과 함께 죄가 발생하게 되었다.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에 실패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여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그래야만 인간의 운명은 희망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인간의 운명은 매우 비관적이 된다.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에 실패한 인간의 모습이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숨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고통과 수고 없이는 살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성경에서 의미하는 죽음은 영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두 가지이다. 성경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불복종하므로 인간에게 영적 죽음과 함께 육체적 죽음도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의 유예기간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아울러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면 인간이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아도 죽는다. 그러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연적인 죽음은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이 되었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으면 인간은 자연적으로 죽되, 그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죄는 죽음을 의식케 한다. 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자 하는데서 발생된다. 그리고 죽음은 탐욕, 소유욕을 야기시킨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은 “우리가 종말로부터 처음 창조에로 눈을 돌릴 때 죽음은 모든 살아있는 것의 개방 상태에 있다.” 라고 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약속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바라볼 때 죽음은 결코 저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으로 가는 한 과정이다. 이어서 그는 “인간의 삶은 변화하지 폐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죽음은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는 과정이지 하나님 안에서 형성되어 가는 삶을 폐기시키지 못한다.” 라고 했다. 그런데 그러한 죽음이 죄를 지었을 경우, 즉 형벌, 가책 가운데서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누구나 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강한 자나 약한 자, 부자나 가난한 자, 권세를 가진 자나, 갖지 못한 자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독재자나 악한 사람은 이 죽음을 빌미로 해서 사람들을 굴복시켜 자기 수중에 넣는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가장 약해지는 동시에 비굴해 질 수도 있다. 그러한 죽음을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간의 찬양을 방해하는 모든 상황, 곧 질병, 박해, 감옥, 망명과 같은 상황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상황들 가운데서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고 그러한 단절은 우리의 생각을 불행과 저주로 몰아간다.

나는 지난 날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이 아주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죽음은 나와 매우 가깝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죽음이 어느 때에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경험되고, 어떤 때에는 그렇지 않게 경험되었다. 나에게서 죽음이 두려움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는 나 자신이 하나님과 바른 교제 가운데서 그 분을 깊이 신뢰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 않고 죽음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는 죄를 짓고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상태에 있을 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가운데 그 분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을 때 죽음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그 단절을 불행과 저주로 받아들일 때 죽음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신앙도 죽음을 면제시켜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 죽음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영원한 삶으로 이어주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게 될 때 죽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맺어진 교제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의 고백은 늘 새롭고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누구에게나 언젠가 맞이해야 할 죽음, 그러나 죽음이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닌 하나의 선물이 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갱신해 가야 한다. 먼저, 매일의 삶에서 우리 자신을 소외 시키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소외 시키고 지나치게 외향적인 것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살아간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소외시킨 우리 자신은 통제할 수 없는 괴물과 같은 존재로 우리 자신을 괴롭히게 될 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 소외된 자신은 소외 시킨데 대한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가 죽더라도 우리의 무의식은 계속 남아있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소외시킨 우리 자신은 계속 고통 가운데서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적대, 분노, 미움, 원한의 관계를 풀어가며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웃과의 적대 관계는 하나님의 용서를 차단하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 없이는 우리는 죽음을 선물로 맞이하기가 어렵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탐욕, 욕심으로부터 해방되어가야 한다. 탐욕, 욕심은 우리를 하나님 대신에 돈, 성, 권력과 같은 것에 집착하게 하고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게 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더욱 방어적이 되게 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빠져 버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생활에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의 고통스럽고 긴박한 현실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신뢰해 가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건강하고 부요할 때에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질병과 가난과 고난가운데서는 하나님에 대한 회의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해가는 일에 실패할 때 쉽게 유혹에 빠지게 되고, 죄를 짓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운명은 비관적이 되고,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갈보리 언덕 위의 십자가는 우리의 현재 시간을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으로 이어주는 다리이다.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죽음의 계곡을 찬양하며 넘어설 수 있다. 이토록 고귀하고 거룩한 죽음의 과정을 믿음과 찬양으로 맞이했던, 한 영혼이 남긴 아름다운 기도 시 한편을 소개한다.

죽음을 바라보며

제게 손을 놓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승의 삶을
부여잡으려는
저의 환상과
두려움과 집착과 열망을
당신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믿습니다.
당신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을 때
당신께서 저를 부르실 것이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당신 사랑이
제가 미처 끌어안을 수 없는 기쁨을
제게 마련하시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저의 모든 잘못들을 용서하시리라는 것을.

그런데, 그런데, 아직도
부서진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처럼
저는 손을 놓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고 낯선 까닭에 무섭습니다.
당신이 제게 빛을 약속하신 그곳에서 저는 단지 어두움만을 바라봅니다.
참 삶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저는 단지 삶의 끝장만을 바라봅니다.


당신은 저의 인간적인 집착을 이해하십니다.
저의 불완전한 감각을 이해하십니다.
저를 지으시고 자라게 하신 분은 바로 당신이시기에
제게 느낌과 환상을 주신 분도 바로 당신이시기에

당신은 보고 계십니다.
제가 붙잡혀서, 이끌려서
제가 알지 못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함을

저의 기력은 쓰러지고
저의 총명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저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당신만이, 오로지 당신만이
끝없는 사랑이시기에
늘 그러하셨듯이 제 곁에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고독한 여정의 황혼에서,

당신께서 저를 붙잡으시고
저를 이끄시며,
저를 받아들이시고
저의 부서진 형체를 다시 맞추실 것입니다.

당신 앞에
저는 아무런 비밀이 없습니다.
두려움이나 부족한 답변을 감추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약함과 힘없음과 두려움이
당신 앞에서는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 것도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당신 팔 안에 잠들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빛 안에서 깨어나기를.

저는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무한히 자비하신 나의 하나님
저는 믿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눈이 볼 수 없고
귀가 듣지 못하는 것을
당신께서 죽음 너머에 저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것을.

당신의 이름 안에
저는 내어놓습니다. 생의 남은 시간을.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여기 대령하였나이다!
저의 마지막 여정에 내내 함께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영원히 당신과 함께 머무를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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