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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호

호스피스, 그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가이드
  글·윤찬우 (이화여대 동대문병원 원목)

병원만큼 인간의 양면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한 쪽에서 탄생을 알리는 갓난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감격의 눈물도 보인다. 다른 한쪽에서는 침묵이 흐르면서 울음소리와 함께 슬픔의 눈물이 흐른다. 아이를 받아낸 의사가 또 하나의 생명을 보며 기뻐할 때 호스피스(Hospice)병동에서는 또 하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예정된 죽음이고 준비도 해두었지만 죽음이라는 슬픔의 무게는 동일하기에 묵직한 아픔을 준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음도 함께 가지고 오는 것인데, 탄생과 죽음의 풍경은 이렇듯 너무 다르다. 그러나 그 풍경에서 공통적으로 관통되는 건 눈물이다. 호스피스병동에서는 쉽게 눈물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호스피스환자들과 보호자들이 꼭꼭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눈물은 너무나 많다. 그들은 그렇게 다른 가슴으로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호스피스란 임종환자 및 그 가족에 대한 전인적인 돌봄(Care)과 인위적인 의료집착으로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단축시킴 없이 자연스런 임종환경을 제공하고 육체적, 영적 그리고 심리적 돌봄을 통하여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을 인간답게 수용할 수 있도록 도우며, 한계수명을 가진 환자에 대해 병원과 가정의 간호를 병행하는 총체적 돌봄의 행위이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팀원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호스피스팀은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의료팀과 영적인 부분을 돌봐줄 목회자, 인간적인 관심을 가져줄 자원봉사자, 재정지원 및 사회적 돌봄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사회사업가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라는 신앙 안에서 생과 사의 모든 과정을 하나님과 함께 걷도록 돕는 영적 돌봄이 반드시 포함된 의료시스템이다.

죽음을 생의 끝점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생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환자에게 보다 의미 있는 생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단순한 의학적 사슬에 의한 수동적 삶의 연장보다 낫지 않을까? 호스피스란 바로 이러한 철학을 배경으로 매우 오래전부터 발달하여 왔다. 그동안 호스피스는 의료제도권 밖에서 비제도적이고 소규모로 시행되어 왔으나 19세기말부터 본격적인 이론의 정립과 함께 급격히 발달되어 왔다. 특히 최근 임종환자 및 노령인구의 증가 등에 의해 의료수요가 급속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호스피스는 효율적인 의료자원의 이용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주목받아 왔으며, 이제 호스피스는 선진국에서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완화의학(Palliative Care)이다. 우리나라도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의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까지는 초기단계에 놓여있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나라에도 제도권 내에 완화의학과가 생길 것이라고 한다.

호스피스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과거의 의학 및 의료시스템에서는 임종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반해 호스피스에서는 임종을 자연의 한 과정으로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환자 개인의 존엄성을 고양하고 주어진 삶의 내용을 보다 충실히 하려고 노력함에 있다. 호스피스는 죽음에 대한 고요한 통찰력을 포함하고 임종환자가 그의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 싸여 평온하게 마지막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한다. 호스피스는 하나의 간호공동체이며 인간이 마지막으로 머물면서 쉬고, 생을 정리하고 완성하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생명윤리적인 측면에서 아직 법으로 허용되어 있지 않은 안락사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대부분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병원의 역할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의학적인 힘을 부여할 수 없는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르는 곳. 쉽게 말해 죽음을 준비하러 오는 곳이 호스피스병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와 같은 정의가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동안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호스피스팀의 역할은 말기 환자에게 아주 중요하고 적절한 의료시스템이다. 특히 고통이 심한 환자들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말기 환자에게는 어떤 특별한 치료법보다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이미 모든 할 수 있는 치료와 수술은 다하고 만신창이가 된 환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을 정리하는 순간에 그간에 풀리지 않던 인생의 매듭도 영적, 심리적, 사회적, 접근을 통해서 하나하나 관계 개선을 도모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의료진은 물론 병원 내에 훈련되어진 호스피스 팀원들의 탁월한 지지가 강력히 요청된다.

만약 자신이 앞으로 몇 개월도 장담할 수 없는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든 쉽게 삶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로워하는 환자들을 보면 참으로 힘들다. 누군들 자신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다른 곳까지 전이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인 췌장암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진통제로 조절하며 고통을 참아내는 상황에서도 늘 웃어주었다. 자신을 위해 애쓰고 있는 주변 사람들한테 고마우니까 아픈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 처절한 고통이 보인다. 그런 환자의 얼굴을 볼 때면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다. 수많은 환자들을 접해 왔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 누가 죽음을 그냥 받아들이겠는가,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지고 작아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그들이 바라보는 창밖의 세상과 우리가 평범하게 내다보는 세상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 진학은 못했지만 열심히 사회생활을 해 기반을 잡고 결혼을 준비하던 28살의 꿈 많은 청년이 있었다. 누가 봐도 건강해 보였던 그는 간암말기로 이 병동을 찾았다. 처음에 그는 자신은 누구보다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츰 멀어져가는 주변사람들, 그 단절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통증을 참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그러나 신앙을 받아들이고 차츰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버텨나갔다. 그렇게 그 환자는 죽음의 의미를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일러주고는 떠나갔다. 모든 환자들이 다 기억에 남지만 특히 젊은 환자들을 보면 마음이 더 아프다. 아직 남은 날이 더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말이다. 4살짜리 아들을 남긴 채 젊은 부인을 먼저 보내는 남편, 딸 결혼 며칠 앞두고 떠나는 엄마, 어린 자녀들에게 커서 읽어보라며 편지를 미리 써두고 간 아버지, 고생만 한 부모를 보내는 자식들, 10년만 더 살게 된다면 그동안 한 번도 못간 아내와의 여행으로 그 10년을 다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가 10일도 채 안 되어 떠난 결혼 30년차의 남편, 다들 대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떠난다. 그러나 환자들은 그냥 떠나지 않는다. 준비하는 동안 겪었던 고통을 통해 남은 이들에게 사랑과 용기, 인내를 가르쳐 주고 떠난다.

환자들이 떠나고 나면 슬픔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 된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호스피스팀에서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사별가족들도 지속적으로 보살펴 준다. 떠나간 환자들만큼이나 남아있는 가족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아내를 보내고 영정사진을 자동차 옆 좌석에 두고 다니는 남편, 남편을 보내고 병원이 위치한 동네 근방에도 오기 싫어 그 근처를 지날 때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부인. 남편을 보내고 자신도 병들고 의지할 곳 없어 호스피스팀원이 보호자가 된 할머니 등. 대체로 1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가정 방문, 정기 체크, 사별지지모임 등의 사별가족 관리를 하는데 가급적이면 빠른 시간 내에 슬픔을 떨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유독 슬픔에 오래 묻혀 있는 이들이 많다. 아마도 그것은 사별 자체가 가장 큰 상실의 고통이기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호스피스 팀원들은 물론 사별가족들과 남아 있는 자들 모두에게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옷깃을 여미는 겸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는다.

호스피스 환자들을 떠나보내는 날이면 어김없이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평소에 좋아하고 외우던 시인데, 슬프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시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꿈꾸는 ‘행복하고 편안한 죽음’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인생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소풍이었다라고 감히 단언해 본다.


귀천(歸天)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쓰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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