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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호

낚시의 미늘을 없애는 신사년(辛巳年)의 신사 숙녀
  글·김종철 ()
신사년(辛巳年) 벽두부터 얼음이 두껍게 얼어붙은 강이나 파도 일렁이는 바다에 가서 겨울 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다들 따끈한 아랫목에 누워 정겨운 가족들과 함께 신정을 맞이하길 원할 텐데, 인적이 드문 강이나 바다를 향해 새벽 같이 나서는 강태공들 말이다.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연초부터 설치는 낚시꾼들이 대단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미친 사람’처럼 여겨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어떤 분야나 대상에게 미치지 않고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나 싶다. 필자가 살고 있는 대전에는 “테미”라는 동네가 있고 “테미회(테니스에 미친 사람들의 회합)”란 테니스 동호회가 있는데, 이 둘을 상호 관련된 것으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가끔씩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

여하튼 간에 신년 원단(元旦)부터 모두들 무엇을 얻거나 달성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다. 이렇게 뭔가를 성취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내면을 가만히 살펴보면, 꽤나 큰 외로움(loneliness)이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될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마음 한 가운데에 버티고 있는 허전함, 쓸쓸함, 외로움을 메우기 위해 자꾸 외부 세계로 눈을 돌려 텅 빈 마음을 채울만한 대치물(substitute)을 찾게 되는 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인 줄 알다가, 점점 더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생각하는 자기인 줄로 착각하여 ‘가까운 타인(가장 가까이 있지만 결국은 드높고 두터운 벽을 쌓은 타인으로 여겨지는 가족, 친지, 이웃)’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데에 극도로 예민해지게 된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인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 왜 자기에게 관심을 쏟으면서 자기의 필요를 척척 알아 채워 주지 않느냐 하고 자주 불평 불만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원망하는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떠나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하는 한편, 기어코 자기를 떠나는 이들이 생기게 되면 그들을 향해 욕을 바가지로 퍼붓기도 할 것이다. 자기가 사랑을 듬뿍 받고 난 후에야 겨우 남을 사랑할 마음이 생기고, 자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남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필요가 없어지면 쉽게 그 사랑을 거두어 가기도 할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낚시꾼들은 낚시 끝의 안쪽에 있는 ‘미늘’ 혹은 ‘구거(鉤距)’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손톱 위의 살 껍질이나 나뭇결 등이 가시처럼 얇게 터져 일어나는 부분을 ‘거스러미’라고 하는데, 낚시 끝의 이 거스러미처럼 생긴 작은 갈고리를 미늘이라고 하는 것이다. 낚시 끝에 끼운 미끼를 먹으려고 입질을 해대던 물고기가 이 날카롭게 휘어진 미늘에 한 번 걸리게 되면 여간해서는 잘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이 미늘이라는 것이 비단 낚시 바늘 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말이나 마음에도 있어서 정작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꿈에도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매순간 자기의 외로움만 채우느라 극성을 부리는 사람의 경우,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것이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자기 속에 깊숙이 품고 있던 예리한 미늘로 상대방을 일순간에 낚아채면서 되돌아서길 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는 가운데 쓸쓸히 무대 위의 두터운 막이 닫히는 ‘외로운’ 인생 드라마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흔히들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라고 비유하곤 하는데, 그 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우인 우리들의 모습이 무대 위와 뒤에서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는 데에 더 큰 비극이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주시하는 무대 위에서는 착하고 아름답고 용감하고 거룩하고 슬기로운 주인공처럼 분장하여 그에 합당한 최상급의 연기를 해대지만, 실생활에서는 드라마 속의 분장이나 의상 혹은 탈을 다 벗어 내팽개치고 무대와는 정반대의 삶을 연출해 내기도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아닌가?

사실 우리가 영화, 드라마, 오페라, 혹은 연극을 볼라치면 관중이나 청중을 자유자재로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을 것이다. 관람객을 객석에서 끌어 올려 무대 위의 인물과 동일시하도록 만들면서, 극중 인물과 똑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즐거워하고, 애간장을 졸이게 만들게 하는 일급 배우들 말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온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를 연기하는 명배우들이지만, 실제 생활이나 무대 뒤에서는 엄청난 시기, 질투, 경쟁, 분노, 증오로 인해 배우들 상호간이나 연출가, 제작자 및 관련자들에게 미늘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연예인, 정치가, 운동 선수 등 대중의 스타가 되는 당사자나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열광하거나 호감을 가지는 열성 팬 혹은 단순히 그들을 알고 있는 대중에게까지, 그들의 스캔들, 가정 파탄이나 온갖 비리들이 얼마나 가혹한 미늘로 작용하는가? 그런 일이 폭로될 때마다 우리 모두는 집단 속에서 더욱 더 심한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던가?

이와는 달리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스스로 고독(solitude)이나 고독한(solitary) 삶을 찾아 나서는 별난 사람들이 있어 뜻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겨울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다 이런 부류에 속할 리는 없겠지만, 개중에는 스스로 고독을 즐기기 위해 단잠이나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도 마다하지 않은 채 새벽부터 나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되살아난 경제 한파가 한겨울의 냉기를 더 부추기고 있는 이 때에, 스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는 커녕 오히려 군집한 무리를 피해 군중 밖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자신이나 자연과 싸우러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강태공이 아니더라도 꽤나 존경스러운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 중에는 추운 겨울에 드리운 낚싯줄을 통해 물고기를 낚기보다는 심연(深淵)과 같은 자신의 진면목을 낚아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낚싯밥을 보고 입질하던 물고기가 꿈틀거리며 미늘에 걸릴 때라든지, 미늘이 찌르는 아픔을 뒤로 한 채 필사적으로 도망가면서(flight) 치열한 투쟁(fight)을 벌일 때에, 그 낚싯줄과 낚싯대를 통해 팔에 전달되는 전율을 즐기는 전문 낚시꾼들이 있는가 하면, 깊은 물 속의 물고기들과 대화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화합이나 어지러운 세상을 향한 일말의 희망을 낚아내는 수준 높은 강태공들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이들이야말로 온 몸을 얼어붙게 하는 지독한 한파를 견디면서 자신과 끝없는 대화를 통해 자기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왜 사는지, 2001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파헤치는 고독의 달인(達人)일 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아님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자(智慧者)일 것이다.
 
하나님 앞에(神前) 모든 가식을 벗고 누추하고 더러운 모습 그대로 고독하게 섰을 때, 그 쓰레기 같은 인간이 ‘재활용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recycling grace of God)’로 인해 다시 창조 당시의 존귀한 상태로 환원되는 감격을 느낄 줄 아는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일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처절한 고독을 감내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자기에게 적의를 품고 다가오는 공격수들을 더 큰 ‘적대감(hostility)’으로 맞받아 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비워 상대방이 자신 속으로 들어올 자유까지 허락하는 ‘따뜻한 환대(hospitality)’의 인격을 갖춘 훌륭한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모두 가난하여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멋진 신사 숙녀일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굳이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복잡한 곳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그 무리 속에서 자기의 내면을 평온한 마음으로 성찰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남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랑할 대상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자기나 이웃에게서 어려운 상황을 발견할 때, 자기나 이웃을 문제투성이의 골치 아픈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문제가 자기나 이웃에게 생겼을 뿐이어서 그 문제를 같이 손잡고 해결해 보자고 미소 띤 얼굴로 말할 수 있는 멋쟁이일 것이다.

문제가 있는 데도 없는 척 가장하거나(fake) 일단 접어두고(fold)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confrontation)할 용기를 가진 신사 숙녀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낚싯바늘 끝에 날카롭게 되꼬부라진 미늘이란 덫을 사용하여 남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기보다는, 그 미늘을 빼서 상처를 싸매 준 후에 미늘을 두들겨 펴서 다시는 미늘 노릇을 못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장인(丈人) 혹은 교정인(矯正人)일 지도 모른다.

물고기를 옭아매는 미늘을 없앤 후에, 환부(患部)의 절단 부위와 피부를 봉합하는 수술용 바늘로 바꾸어 버리는 ‘발상의 대전환’을 할 수 있는 신(新) 지식인일 것이다.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자기의 꿈을 우상시하는 환상(illusion)이나, 자신이 소유한 것, 자기가 아는 사람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계획, 자기가 “쌓아 놓은” 성공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였던 어리석은 환상을 떨쳐버린 지 오래 되는 사람일 것이다.

감상적이 되거나 잔인하게 폭력적이 되는 것 사이를 시계추처럼 반복하는 사람의 태도나 행위란 “내 인생은 내 것일 뿐”이라는 환상에 근거한 것임을 일찌감치 자각한 사람인 것이다. 복잡한 세상살이 중에서도 훈련된 고독의 정적을 통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너머 들려오는 하나님의 소리에 민감할 줄 아는 기도(prayer)의 용사이다.

2001년의 정월(正月)이 밝았다. 이 첫 달부터 우리 모두 주님께로 팔을 뻗고 발돋움(reaching out)을 하지 않으련가? 사탄이 드리운 낚싯줄의 미늘에 걸려 화농(化膿)한 환부를 도려내시고, 그 빈 공간에 생명의 말씀을 묘약(妙藥)으로 채우신 후, 성령의 불로 미늘을 없애 만드신 수술 바늘로 깨끗이 봉합하시는 명의(名醫) 예수님을 우리 모두 함께 찬양하면서 말이다.

치유, 전파, 교육 사역으로 육신이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도, 모든 것을 뒤로하신 채, 오히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과의 기도에 전념하신 예수님의 처절한 고독이 얼마나 귀한가? 따라온 제자들까지도 산밑에 머무르게 하신 후에 홀로 감람산에 오르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고독한 기도의 제단을 쌓으신 주님, 고통과 수치와 외면의 극치인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절규의 기도를 외치신 그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하지 않을까?

얍복강 가에서 홀로 천사와 씨름한 야곱처럼 삶의 한 가운데에서 주님과 고독하게 씨름하는 모래판을 조금씩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소망할 만한 유일한 가치이다” 라는 H. 드러먼드의 말처럼,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본을 따라 주님을 닮아 가는 신사년(辛巳年)의 신사 숙녀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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