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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호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글·김종철 (충남의대/충남대학교병원 진단방사선과 주임교수/과장, 영상 의학회 회장, 신실회(신앙을 실천하는 모임) 대표, 가족 치유 상담 센터 강사 및 지도위원이며, 늘사랑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의학 전문 서적 외에 <성스러운 성에 성공하자> <팔푼이 행진곡>)
지난 3월, 제 13차 유럽 방사선 의학회에 학술 연구 논문 세 편을 발표하러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Wien, 비엔나 Vienna)에 무사히 잘 다녀왔다.

오스트리아에 가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빈은 동부 도나우(Donau, 다뉴브 Danube) 강 상류에 자리잡고 있는데, 행정ㆍ금융ㆍ상업의 중심지 및 국제 기관이 위치한 국제 도시로서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의 관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빈의 중심지에는 구(舊) 시가(市街)를 둘러싸고 환상 도로가 나 있다.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관광 명소의 대부분이 자리잡고 있는데, 도로의 북쪽에 접해 도나우 운하(Donaukanal)가 통과하고, 그 바깥쪽으로 좀 떨어져서는 도나우 강 본류(本流)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학회 장소인 오스트리아 센터(Austria Center) 즉 빈의 국제 회의 센터(Vienna International Centre)는 도나우 강 본류 위쪽에 구 도나우 강(Alte Donau)과 신 도나우 강(Neue Donau) 사이에 있는 Uno-City와 Kaiserm hlen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환상 도로 안에 있는 빈의 도린트 비더마이어(Dorint Biedermeir, Wien) 호텔에 묵고 있던 필자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학회장을 출입하면서 꿈에도 그리던 ‘푸른 도나우’의 강물을 쳐다볼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꿈에도 그리던 ‘푸른 도나우 강’을 건너 세계적인 ‘유럽 방사선 의학회’ 학회장에서 한 편도 아닌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하게 된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필자가 몸담고 있는 충남의대나 충남대학교병원에게도 영예로운 일이 되지 않았겠는가?

구연(口演, oral presentation)이 끝날 때마다 외국의 저명 의학자나 의사들과 열띤 토론을 하다보니, 멀리 아시아의 동쪽에서 온 동양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래 연구하고 발표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마냥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필자는 가족 동반하여 9년 전에 오스트리아를 다녀간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 아니 본인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마냥 새롭게 느껴져서 당혹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였다.

10년이면 강산(江山)도 변한다는데, 그 10년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의 강과 산이 변하는 속도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본인의 기억이 쇠퇴해지는 데 대해 참 많이 놀라기도 하였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인간의 기억이란 게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필자가 머물고 있던 예술의 도시 빈은 오스트리아의 숲과 푸른 도나우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전원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558~1806년에 신성 로마 제국 중심지였고, 그 후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중심지였는데, 지금까지도 그 찬란하였던 제국주의의 영광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도시이다.

중부 유럽의 강자로서 합스부르크(Hapsburg) 왕조가 영화를 누렸던 18, 19세기에 이 도시가 완성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에는 동서 유럽의 중간에 놓인 교통의 요충지로 부다페스트, 프라하 등 동유럽으로 가는 관문 도시로 발전했다. 빈은 건축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수세기 동안 세계적 중심지이었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음악의 도시’였다.

이곳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브람스, 말러, 부르크너, 쇤베르크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탄생했거나 활약했던 곳으로, 서양 음악가들이 이곳을 본고지로 삼을만 하였다. 티롤 민속춤에서 파생된 향토 음악으로서의 ‘빈 왈츠’는 1820년에 이곳 빈에서 확립되었으며, 그 직후에 위대한 빈 오페레타(Operetta) 시대가 개막되었다.

또한 빈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교향악단 중의 하나인 빈 관현악단(비엔나 필하모닉)의 본거지이다. 연주 단체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 Staatsoper, Vienna State Opera) 관현악단, 시립 빈 교향악단과 빈 소년 합창단 등이 있다. 다행히 필자는 학회 기간 첫날 점심 무렵에 학회장인 오스트리아 센터의 Room A에서 거행된 개회 기념식(Opening Cere-mony)에서 빈 소년 합창단을 직접 보며 그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기쁘기 그지없었다.

필자는 몇몇 일행과 함께 학회 기간 중에 짬을 내어 교통 노선도가 잘 표시된 시내 지도를 들고 빈 시내를 두루 섭렵하며 마음껏 돌아다녔다. 삼일 동안 대중 교통 수단인 트램 즉 시내 전차(Stra en Bahn), 버스 빔(Bim), 지하철 U-Bahn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72시간 패스(Wien Netskarte)를 사용하니,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구경하다가 피곤하면 또 승차하여 대중 교통 수단의 좌석에 편안히 앉아 쉴 수도 있어서 참 편리하기만 하였다. 말 그대로 세계의 도시인 빈을 ‘휩쓸고 누비며 주름잡고’ 다닌 그 때가 벌써 그립기만 하다.

특히 지금도 필자의 기억이 생생한 곳은 성 슈테판 사원(St-Stephans-dom)에서 케른트너 슈트라세(Karntner Straβe)를 통해 이어지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이다. 이 오페라 극장은 파리의 오페라 드 가르니에, 밀라노의 라 스칼라와 함께 유럽 3대 오페라 하우스로도 유명하지 않은가? 이 극장은 빈의 환상 도로 안의 건축물 가운데 최초로 완성된 곳으로, 오페른 링(Opern Ring)과 케른트너 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오페라 극장이다. 장려한 외관에 어울리게 내부도 고블란의 태피스트리와 모짜르트의 마적을 주제로 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화려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음악의 도시 빈의 대표적인 오페라 극장인 만큼 바그너, 모차르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오페라 연주에서 세계 제일이라는 평판을 듣는다. 1869년 5월 15일 제국 궁정 오페라 장으로 개관한 이 극장에서는 모차르트의 돈조바니를 개관 기념 작품으로 올렸다. 구스타프 말러가 음악 감독으로 있던 1897~1907년 사이의 10년간이 전성기였으나 제 2차 세계대전 때 많이 파괴되었다. 개축하면서 최신식 무대 장치를 갖춰 새로운 느낌으로 바뀌었으며, 1977년 카라얀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제2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 곳은 개관한 이래 5~6월에는 예술 음악제, 2월에는 대무도회가 개최되는 등 연주회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매년 9월초에 시즌(season)이 시작되어 6월말까지 연간 300회 이상 오페라와 뮤지컬이 공연된다. 좌석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데, 300AS(오스트리아 실링 Austria Schilling, 지난 3월에는 1AS의 환율이 약 84~85원 정도이었음)에서 1500AS까지 이란다.

입석은 2층과 3층에 따라 30~50AS이다. 1년 중 연주가 없는 7, 8월의 10, 11, 13, 14, 15시와 연습이 없는 날의 14, 15시에는 실내 입장이 허용되는데, 관광 안내자(가이드)를 대동한 투어(tour)를 할 수 있다. 오페라 하우스 좌측 모퉁이의 입구에서 표를 사면, 언어별(영어, 불어) 가이드가 나와 약 30분 정도 내부를 구경시켜 준다.

필자는 9년 전인 1992년 7월에 가족과 함께 모처럼 이 곳에 왔다가 시즌 오프(season off)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실망하였는지 모른다. 특히 성악을 전공한 아내는 멀리 오스트리아 빈에까지 와서도 국립 오페라 극장의 무대에 올려지는 오페라 한 편도 보지 못하고 간다고 못내 서운해하였다.

그러나 영어 가이드를 따라 오페라 극장 내부로 들어가 무대 뒤편까지 샅샅이 구경하는 행운을 맛볼 수 있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던 기억이 난다.
빈 시내를 관광하다 보니, 9년 전 오페라의 본 고장에서 그 유명한 오페라를 보지 못하고 귀국한 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 이번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입석 관람권을 사서라도 예술의 향기에 한 번이라도 마음껏 젖어 보리라 다짐하였다.

사실은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에 여행사를 통해 C석이나 G석이라도 좋으니 예매 좀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이미 표가 매진되어 오페라 관람을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막상 세계적인 오페라 도시에 와 보니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학회 스케줄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 드디어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 가보았다. 동행한 두 한국 의사들과 함께 오페라 극장의 뒤쪽으로 걸어가다가, 오후 3시경인데도 오페라 극장을 끼고 긴 줄을 서고 있는 노인네들의 한 무리를 발견하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저녁 7시부터 오페라가 시작된다고 알고 있는데 오후 3시에도 벌써 이렇게 장사진을 이루고 있으니, 나같이 외국에서 온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낚시 할 때 앉은 X자형의 접는 의자에 앉아 마냥 극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긴 행렬을 보다가, 필자는 비교적 앞줄에 서 계신 할머니 한 분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오늘 무슨 공연을 하기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긴 줄을 형성하고 있느냐 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유명한 “빌리 버드(Billy Budd)”를 공연하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테니 다른 계획 모두 다 취소하고 자기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입석표를 사라고 강요하다시피 권유하지 않는가?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두 한국 의사에게 계획 변경 및 오페라 관람에 관한 동의를 구하려고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둘 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도망 갈 제스처부터 취하고 있지 않은가? 할 수 없이 그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후에 별도의 계획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떨떠름한 표정을 뒤로하고 필자는 그 노인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긴 대열에 끼어 들었다. 오스트리아 노인들은 이국에서 온 필자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오후 네시에 오페라 극장 문이 열린다고 설명해 주었다. 동행인을 따돌리고 오페라 관람에 인생을 건(?) 결단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말이다.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해서 그런지, 그들은 동양에서 온 황인종의 쏟아지는 질문을 귀찮은 기색도 없이 잘도 받아 주면서 성심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4시에 일단 극장에 들어간 후 5시까지 한 시간 동안 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단다. 오후 5시에 저녁 매표소(Evening Box Office)에서 입석 티켓(Tickets for Standing Room)을 판매하는데, 발코니냐 아니면 무대가 바로 바라다 보이는 맨 뒤 좌석이냐에 따라 입장료가 30~50AS 정도 한다고 하였다.

표를 산 후에는 입석 관람석에 빨리 들어가서 손수건이나 머플러 등으로 사람이 기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철제 막대에다가 표시(mark)를 하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무대 맨 뒤쪽에 있는 입석 관람 장소에 가야 성악가나 오페라 가수들을 더 잘 볼 수 있고 소리도 잘 들린다고 추천해 주기도 하였다.

그들과 한 시간 내내 재미있게 담소하다가 드디어 오후 5시가 되어 50AS를 주고 입석표를 매입하였다. 그들이 일러 준 대로 2층 맨 뒤쪽의 스탠딩 룸(Standing Room)에 들어가서 지니고 있던 손수건으로 본인의 자리임을 표시한 후, 7시가 될 때까지 휴게실 좌석에 앉아서 오페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필자가 그 때 관람한 벤쟈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오페라 “빌리 버드”는 그 유명한 모비 딕(Moby-Dick)의 작가 멜빌(H. Melville)의 사후에 발견된 작품 “선원 빌리 버드(Billy Budd, Sailor)”를 대본으로 만들어진 유명한 오페라이었다.

멜빌은 이 작품에서 인간의 선과 악을 대변하는 두 인물의 대립과 그것이 사회적 규범에 의해수렴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는데, 오페라 ‘빌리 버드’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살려 예술적으로 절묘하게 잘 표현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시간의 오페라 공연 중 중간에 한 번 휴식 시간이 있었다. 어렵게 들어온 입석에서 오페라 “빌리 버드”를 관람하던 필자는 오페라 시작 후 40~50분이 지나면서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후들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이 서서 관람하고 있는 옆 사람들을 쳐다보았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중년의 남녀 할 것 없이 온 청중이 미동도 하지 않고 ‘오페라 삼매(三昧)’에 빠져 있지 않은가?

필자는 너무도 놀라서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을 뻔하였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렇게도 건강한가? 의학적으로 저게 가능한 일인가? 필자 같이 일주일에 네댓 번씩 테니스를 하여 근육이 단단하게 단련된 사람도 이렇게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아파 죽겠는데, 어떻게 오스트리아 사람이라고 해서 저렇게 오페라 자체에 빠져서 허리와 팔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몇 시간 동안 잘도 서 있는가?

저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에 탐닉한 채 무아지경에 빠져있으면 그들의 몸에서 엔돌핀[Endorphin = Endo(내부에서 분비되는) + Morphine(모르핀)]이 샘솟듯이 분비되어 무통(無痛) 상태에 빠지는 것인가?

휴식 시간(Intermission)이 속히 오길 갈망하던 필자는 첫 막이 내리자마자 부리나케 휴식 공간을 찾아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한참 쉰 후에 스탠딩 룸에 같이 있다가 나와서 필자의 옆에 앉은 중년 여인에게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자기는 일년에 10~15번 정도 이렇게 입석표를 사서 오페라를 관람하는데, 오랫동안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별로 힘들지 않다고 대답하지 않는가?

그런 대답을 듣고 필자가 어떻게 오페라 관람을 중도에 포기하고 나올 수 있겠는가? ‘은근과 끈기’를 자랑하는 한민족을 대표하여 필자는 그날 끝까지 꿋꿋이 서서 그 오페라를 목숨 걸고 정복하고야(?) 말았다. 비록 그날 호텔에 돌아와서 완전히 파김치가 된 채 ‘큰 대(大)’ 자(字)로 뻗어서 곤한 잠에 빠져들었지만 말이다.

이상과 같이 필자는 빈의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정말 값지고 좋은 체험을 하였다. 진리, 선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과 몰두는 적극적인 행동과 의지를 수반하여 생산적인 의미와 행복감을 창조하는 반면, 마지못해 억지로 끌려 다니는 수동성은 피차를 피곤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초래하지 않던가? 이후로 필자는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려고 하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들으려고 하는 대로 듣는다’ 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한편, 오페라와 그 가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는 일에 필자가 얼마나 열심을 보이는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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