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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호

뉴 셀프 상담연구소에 거는 기대
  글·김종철 (충남의대/충남대학교병원 진단방사선과 주임교수/과장, 영상 의학회 회장, 신실회(신앙을 실천하는 모임) 대표, 가족 치유 상담 센터 강사 및 지도위원이며, 늘사랑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결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 것 꼭 해야만 되나요? 왜 우리 선배들이나 선조들처럼 스스로 무덤을 파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야 하는 거죠?”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긴 노총각 노처녀들이 결혼과 가정 생활 및 성 문제에 관한 세미나의 강사로 자주 불려 다니고 있는 필자에게 정색을 하며 당당하게 되묻는 말이다.
 
젊은이들의 이런 당찬 반문(反問)을 들을 때마다, 오래 전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기혼 남성의 한사람으로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때가 많은 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을 눈여겨 살펴보면, 행복한 결혼이나 가정 생활의 본을 보여 주지 못하는 부부들이 너무 많아 미혼 남녀들에게 선뜻 결혼하라고 권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굳이 통계 수치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에서도 가정이 무너지는 빈도가 점차 높아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지난 5월 23일에 우리 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혼인ㆍ이혼 통계 결과’는 우리 가정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실상을 객관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축복 받은 뉴 밀레니엄이라고 그렇게도 모두를 설렘 속에 몰아 넣었던 2000년의 한국 가정은 어떠했는지 잘 따져 보아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년 한해동안 우리 나라 국민이 자치단체에 신고한 혼인·이혼 신고서의 인구 동태 항목을 종합·집계해 분석한 통계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에는 모두 33만4000쌍이 결혼한 반면 총 12만 건의 이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는 매일 915쌍의 선남 선녀가 주위의 온갖 축하와 축복 속에 결혼하는 동안에 매일 329쌍이 배우자를 증오하거나 비난하면서 이혼으로 결혼 생활을 끝맺음했다는 비극적인 통계 수치이다. 쉽게 말하면 결혼 대 이혼의 비율이 2000년도에는 2.78 : 1 인 셈이란 말이다. 이는 1999년 한 해 동안에 36만2700쌍(매일 994쌍)이 결혼하고 11만8000쌍(매일 323건)이 이혼하여 결혼 대 이혼의 비율이 3.07 : 1이었음에 비해 꽤나 높아졌음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는가?

계속되는 통계청의 보고는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2000년에 결혼한 부부는 33만4000쌍으로 1999년의 36만2700쌍에 비해 7.9% 감소하였다. 인구 1000명당 결혼 건수를 나타내는 조혼인율은 7.0으로, 통계청이 이 조사를 시작한 지난 70년 이후 가장 낮았다.

특히 주 혼인 연령층(남자 26∼30세, 여자 24∼28세)의 결혼이 눈에 띄게 줄어, 남자의 경우 91년 232.5쌍에서 지난해 173.8쌍으로 급감(急減)했고, 여자도 199.9쌍에서 178.3쌍으로 줄었다.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29.3세, 여자 26.5세로 91년에 비해 남자는 1.3세, 여자는 1.6세가 높아졌다.

주 혼인 연령층 인구의 감소, 학업 연장과 경제 활동 등에 따른 결혼 지연 등으로 혼인율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반면 이혼은 2000년 한해동안 모두 12만 건으로 전년인 1999년의 11만8000건보다 1.7% 증가했다. 조이혼율은 2.5%로 98년 2.5%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3년째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평균 이혼 연령은 남자 40.1세, 여자 36.6세로 91년보다 남자는 2.9세, 여자는 3.5세가 높아졌다. 주된 이혼 사유는 부부 불화(가족간 불화 포함)가 75.2%로 가장 많았고, 경제 문제로 인한 이혼은 10.8%로 91년 2.0%의 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 보고로 드러난 한국 기혼 부부들의 이혼 사유에 대해 우리 모두 심각하게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생긴 부부 사이의 불화와 가정 생활을 같이 하면서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 즉 돈 때문이라는 사실 말이다. 선남선녀들이 서로에게 호감과 애정을 느껴 결혼에 골인할 때에는, 자기들과 같은 환상적인 커플의 사전에는 결코 이혼, 불화, 경제적 갈등 등이 삽입될 여지가 없으리라고 장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그렇게도 경멸하던 불화와 돈 때문에 이제는 서로 헤어지지 못해 아우성들인 부부들이 이렇게 증가하고 있는가? 차라리 각자의 이상, 비전, 인생관, 가치관, 국가관, 교육관 등이 달라서 헤어진다면, 또 어느 영화 장면에서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면 그 이혼에 어느 정도 동조해 줄 사람이 조금은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어찌하여 살붙이고 정겹게 살던 사람들이 서로를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 채 쩨쩨하게 돈 문제로 갈라서야만 한단 말인가?

그러나 돌고 도는 세상에 돈이 없어 돈 때문에 돌아버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이혼 당사자의 아픈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 아무리 화합하고 용서하려고 해도 도저히 받아주지 않는 옹고집쟁이와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찌 그런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느냐 하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의 다리를 놓으려 애쓰다 지쳐 쓰러져 결국은 마지막 수고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부부들의 깊은 상처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실지로 적은 세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부부 사이의 갈등이 당사자인 둘만의 문제와 갈등뿐일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을 게다. 남편과 아내라는 개인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의 고리가 얼마나 복잡하게 엉켜 있는가? 고식적(姑息的)인 고부 갈등 외에도 숱한 가족간의 불화가 부부 사이를 벌어지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는 큰딸이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옛말도 무색하게 그 집안의 장남인 자기 남동생과 올케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막후에서 수렴청정(垂簾聽政) 혹은 섭정(攝政)을 일삼던 왕대비(王大妃)나 대왕대비(大王大妃)처럼 친정을 좌지우지하여 끊임없이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참이나 나이 차가 많은 남동생의 아내가 자기 남편의 형과 손위 동서의 집이나 직장에까지 전화를 해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전화 폭력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 알코올 및 도박 중독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 집안 식구에게 언어 및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여 집안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망나니도 있다. 자기가 미친 사람도 아닌데 정신과 병원에 왜 가야 하느냐고 욕을 해대면서 말이다.

이와 같이 언어 폭력, 정서적 폭력(욕설, 의도적 따돌림, 모욕, 비웃음, 비난, 위협, 무관심 등), 성적 학대, 경제적 학대, 영적 학대(자유스러운 종교 생활의 방해) 등 가정 폭력의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가정에서 폭력을 자주 행사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에게 부닥치는 삶의 긴장감이나 환경적인 스트레스를 잘 견뎌내지 못하고 분노의 충동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내적 분노를 건강하고 밝게 표출할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또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좌절감, 분노, 스트레스 등을 풀어 볼 대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혈연의 가족을 택하기 때문에 가정에 심각하고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가족은 말 그대로 마음껏 화풀이해도 대항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가해자에 대해 무조건 참고 덮어주며 용납해 주는, 즉 뒤탈이 거의 없는 ‘안전한 대상’을 찾아, 가정폭력범은 자기의 분이 풀릴 때까지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곤 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런 폭력을 통해 자신의 내적 상처를 보상받으려 하거나, 자기에게 상처를 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을 자기 가족에게 드러냄으로써 기어코 복수하고 말았다는 통쾌한 심정을 갖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폭력이라는 비인격적 수단을 동원하여 가족 구성원을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가족 내에서 자기의 무한한 권력을 확보하겠다는 무의식적 동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가정 폭력자를 가족 내에 둔 경우는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여 이혼할 가능성이 훨씬 많아 질지도 모른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혼의 쓰라린 심정을 이해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59)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 이미 지상(紙上)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보도된 바 있기 때문에, 그의 사생활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결코 프라이버시 침범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고이즈미는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의 중매로 만난 15세 연하의 미야모토 가요코(45)와 1978년에 결혼했지만, 대형 제약 회사 회장의 손녀인 미야모토가 정치인 집안 며느리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자 4년만에 이혼해서, 지금까지 계속 독신생활을 해왔다.

그가 독신을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쓰라린 이혼 경험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할 때 필요한 에너지가 1이라면 이혼은 그 10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두 번 다시 쓰라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 고이즈미가 평소에 말해왔다고 한다. 이혼을 해 본 당사자나 그들을 상담해 본 상담가들은 고이즈미의 이러한 말이 충분히 공감될 것이다.

그런데 고이즈미가 19년 전 이혼할 당시 아내 뱃속에 있던 셋째 아들을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양육해 온 두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전처의 요청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두 아들의 아버지였던 고이즈미는 이혼 소송 과정에서 두 아들의 양육권을 요구하였고, 그 아들들을 데려가면서 미야모토에게 두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엄마와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둘째가 20세를 넘긴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이즈미는 그 이유에 대해 ‘사생활’이라고만 답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차가운 부정(父情)’을 가진 이혼 독신 남자로 보도되고 있는 고이즈미의 상처투성이인 속마음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떤 부모가 이혼하기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무서운 증오가 사랑의 결실인 자기 자식에게까지 투사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사실만큼은 우리 모두들 제대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아내와 함께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개최된 제 101회 미국 방사선 의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고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만난 주한 미군 상사도 고이즈미와 비슷한 이혼의 아픔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십여년 전에 이혼한 후 혼자서 아들을 키워 직장인이 되기까지 뒷바라지 한 그이지만, 남편과 자식을 내버리고 훌쩍 떠나 버린 아내에 대한 미움 때문에 다시는 재혼하지 않겠다는 결심 하에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자기와 결혼한 후에도 딴 남자와 희희덕거리던 그녀를 꿈에도 용서(forgive)하거나 잊을(forget)수 없다고 했다. 막상 중년의 활발한 성적 욕구는 본국에서 만나러 오는 여자 친구와 가끔씩 해결하고 있지만, 카톨릭 신자인 그로서는 죄책감을 수시로 느낀다고 고백하면서 말이다.

2001년 5월 23일에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의 혼인ㆍ이혼 통계 결과’에 나타난 것처럼 2000년에 우리 나라 국민의 결혼 대 이혼의 비율이 2.78:1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모두 결코 남의 집 불 구경하듯 결코 방관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두 쌍의 부부가 결혼하는 동안에 한 쌍의 기혼 부부가 이혼을 하는 미국을 한국이 따라 잡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아 큰 걱정이 앞선다. 이럴 때에 필자가 살고 있는 대전에서 <뉴 셀프(New Self) 상담 연구소>라는 기독교 전문 상담 기관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리라.

필자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로 7년 전부터 부부 치유 사역을 위한 자조 그룹(self-help group) 혹은 지원 그룹(support group)을 인도해 왔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속에 2년 전부터 천안대학교 상담대학원 주임 교수이신 한재희 목사님(미국 Baylor 대학 상담학 박사, KAPC 임상 감독 회원, KACCP 상담 및 심리 치료 전문가)과 함께 신실회(신앙을 인격, 가정, 사회에 실천하는 모임)를 운영해 왔다.

그러다가 금년 5월 17일(목)에 전문적 기독교 상담 기관인 <뉴 셀프 상담 연구소>를 개소(開所)하기에 이르렀다. 이 상담 연구소는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697번지 글로리 빌딩 4층(042-488-7353, 019-9101-7353)에 위치한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3~24)”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의 삶 속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자 오랜 기도와 준비 후에 설립된 것이다. 자문 위원으로 천안대 강기정 박사, 서울신대 김종환 박사, 성결대 전요섭 교수, 연세대 정석환 교수, 침신대 정동섭 교수, 강남대 홍영택 박사, 장신대 홍인종 박사 등이 수고해 주고 계신다.

오늘날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단절되고 황폐한 인간 관계와 가정의 붕괴 등으로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정서적 불안과 심리적ㆍ영적 고통을 겪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내면적 고통의 시대에<뉴 셀프 상담 연구소>는 전인적 구원을 목표로 한 기독교 가치관을 근거로 전문적 상담 사역을 통해 정서적ㆍ심리적ㆍ대인관계적ㆍ영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삶의 궁극적 의미와 존재 목적을 새롭게 하고 사회의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뉴 셀프”란 ‘좀 더 나아진 인간’이 아닌 ‘새로워진 인간’, 즉 삶의 의미, 목적과 방향의 근원적 변화를 시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진정한 자아를 뜻한다.

<뉴 셀프 상담 연구소>는 세 개의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뉴 셀프 상담실, 뉴 셀프 상담 학교, 그리고 뉴 셀프 신실회가 바로 그것이다. 뉴 셀프 상담실에서는 자격을 갖춘 자원 봉사 상담자를 통해 개인 상담, 부부나 가족 상담, 집단 상담, 전화 상담, cyber 상담, 심리 검사 등을 실시한다.
 
뉴 셀프 상담 학교는 상담자나 가정 사역가들을 양성하는 부서인데, 가정 상담자 양성 프로그램, 상담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가정 사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상담 사례 연구 및 supervision을 실시한다. 뉴 셀프 신실회는 기도 network을 형성하고 Bible prescription 사역을 하며, 가정 위기 관리 자조 그룹, 자녀 문제 자조 그룹 및 독서 치유 그룹(bibliotherapy)을 구성하여 구체적인 치유 사역을 담당하고자 한다.

가정 해체 위기에 처한 우리 나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뉴 셀프 상담 연구소>를 통해 하나씩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성령의 감동을 받으시는 분이 계시면 <뉴 셀프 상담 연구소>나 필자에게 연락하시기 바란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본 연구소의 사역에 동참하거나 기도 혹은 물질로 후원할 수 있다. 뜻을 같이 하는 귀한 무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크나큰 역사에 대한 기대가 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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