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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8월호

부러지기보다는 구부러져야
  글·김종철 (충남의대/충남대학교병원 진단방사선과 주임교수/과장, 영상 의학회 회장, 신실회(신앙을 실천하는 모임) 대표, 가족 치유 상담 센터 강사 및 지도위원이며, 늘사랑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부부가 평생을 같이 살아도 서로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음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 축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나 주위를 살펴보면 아직도 자기만큼 자기 짝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큰 소리를 치곤 하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 앞선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 배우자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주무르길 잘한다. 마치 이탈리아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 및 시인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볼품없이 아무데나 버려진 큰 바위덩어리를 가지고 자기의 의도대로 멋진 조각품을 쪼아내듯이 말이다.

그런 지배적 심리 욕구가 ‘미켈란젤로 콤플렉스(Michelangelo Complex)’로 명명되는 것은 별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러 부부들끼리 대화하는 모습을 필자가 잘 살펴보면, 각 부부의 ‘사랑 온도’를 측정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을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미켈란젤로 콤플렉스’를 가진 부부들은, 어지간히 체면을 차리면서 자기들의 치부를 애써 감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순간엔가 틈새를 보이며 스스로 부부 관계의 결함을 드러내곤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3년 전에 우리 부부가 모처럼 짬을 내어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하회(河回) 마을에 갔더랬어요.”라고 남편이 말을 꺼내면, 그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그 아내가 불쑥 자기 남편의 말에 끼여들면서 “그게 언제 3년 전이에요? 4년 전이지.”라고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예리하게 '정정 보도(?)'를 해댄다. 자기 딴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때 그 남편의 표정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그 남편의 안색이 싹 변하면서 굉장히 당황해하거나 화를 참는 기색을 드러내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다 알아버린 자기 남편의 곤경을 알아채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 자기인 줄도 모르는 그 아내는 자기 남편을 대신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막 해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남편이 처음부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그 진의(眞意)를 파악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머쓱해진 남편은 자존심이 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아니면 자기 아내의 말을 다시 가로채서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막 해 나갈지도 모른다. 바위처럼 냉랭해진 자기 부부 관계의 진면목이 노출되는 부끄러움도 상실한 채 말이다.

여기서 ‘남편’을 ‘아내’로 바꾸어 보아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무튼 이런 종류의 모임이 끝난 후에 한 바탕 부부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른 부부들 앞에서 상대방 때문에 자존심에 막대한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서로가 삿대질을 해 대는 경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부부는 이 지구촌에서 과연 몇 쌍이나 될까?

엄밀히 따져 보면, 어느 부부 둘만의 과거 경험 중에서 그것이 발생한 연도(年度)가 3년 전이냐 4년 전이냐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고 소중한 일이겠는가? 그게 대세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 중요한 사항인가? 그 햇수 자체가 부부간에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일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보면, 우리는 정말 너무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목숨을 걸 때가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이야기하면, 별 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내걸 만큼 우리의 목숨이 별 가치도 없는 것처럼 홀대(忽待)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기혼 부부 사이에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문제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각종 모임이나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나 선교 단체도 결코 그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개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유심히 살펴보면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끝까지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말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취지나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사소한 숫자나 연도 등은 틀려도 그냥 넘어갈 줄 아는 아량과 마지막 말까지 경청하려는 인내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주제를 파악하기도 전에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다보면, 아무리 인격적인 사람들이라도 대화를 이어갈 용기가 없어질 게 뻔하지 않겠는가?
 
소위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일’이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만이 아니고, 저명한 정치가나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부지기수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대단히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데, 아직 본론에 이르기도 전에 서론에서의 사소한 기억 차이를 가지고 왈가불가 트집 잡는 사람이 있다면, 내 기분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렇게 입장을 바꿔보면 서로 이해가 잘 될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우리 현실이 너무 한심하여 마냥 안타깝기만 하다.

도대체 자기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고 불평하면서 주책을 떠는 사람일수록, 이 더운 여름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서라도 차분하게 자신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특히 별 볼일 없는 숫자나 사건은 잊어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기에 말을 끄집어 낸 사람이 정작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상대방을 바로 쳐다보고 그의 말을 끝가지 따라가며 적극적으로 경청할 자세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것이 상대방으로부터 많이 언급되더라도 그런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진정 상대방이 표현하고자 원하는 본질적 의향(意向)과 언외(言外)의 참뜻을 알아내도록 최선을 다해 집중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되는 사회가 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다소 본인의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말다툼을 일으켜 서로가 부러지기보다는, 나중에 상대방의 오해를 풀만한 사항들을 잘 메모하면서 자신을 좀 구부리는 자세를 견지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 살고 싶다. 상대방보고 좀 구부려 달라고 부탁, 요구하거나 강요하기 전에 내 자신이 먼저 허리를 구부릴 줄 아는 유연성과 겸양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이냐 거짓이냐, 맞느냐 틀리냐, 혹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어떻게 해야 서로가 이기고 서로 행복해 질 수 있느냐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숙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환경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요즈음처럼 더운 날씨에 유독 민감해져서 짜증으로 소중한 인간 관계를 그르쳐서는 안될 것이다. 상대방의 언행이 나를 신경질 나게 만든다고 뻣뻣하게 생각하면서 화내다가 스스로 부러지기 전에, 먼저 턱을 쳐들고 꼿꼿하게 대들기 잘 하는 나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쳐서 복종시키고 겸손하게 구부러뜨리면서, 내 자신이 상대방에게 먼저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어보자고 결심하는 것이 어떨까? ‘

스마일(smile)’ 운동의 배지(badge)나 마스코트처럼 눈썹, 눈, 입술도 모두 곡선형으로 구부려 보자! 그러면, 찡그린 이마에 ‘내 천(川)’자의 딱딱한 수직선을 그리고 꼭 다문 입술에 뻣뻣한 ‘한 일(一)’자의 수평선을 만든 채 성난 얼굴로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올 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기상천외(奇想天外)의 피서법이 되지 않을까? 특허청에 특허 신청이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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