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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호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
  글·신동철 (미국 갈보리채플 목사)
미국의 주도로 한반도가 급류에 휩싸이고 있다. 최근에는 올 7월에서 10월까지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사태발전에 대한 고비로 보는 발언들이 난무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 전체가 핵전쟁의 악몽 가운데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오늘날 이 북핵위기의 본질은 90년대 초 세계적인 공산권의 몰락과 함께 북한이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핵무기 개발을 서둘러 온 귀결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위기를 결정적으로 부채질한 것은 동북아시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오사마 빈 라덴의 반미감정과 그 반미감정의 발로인 9?11 테러 사건이라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생각해 볼 때, 세상의 모든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오묘한 것인가가 새삼 우리의 모습을 왜소하게 만든다. 역사는 그 분의 이야기이며, 인류의 운명은 사람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창세전에 세워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것일 뿐이다.

9,11과 미국의 대북정책 급선회

투표용지 끝에 매달린 가냘픈 종이파편이 그 기표를 유효한 것으로 보게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미국 대법원이 손을 들어주어 간신히 미국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W 부시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을 증오하기는 했어도 자신의 손으로 그 생명을 끊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는 그가 선거운동 기간 중 즐겨 사용했던 ‘겸손한 외교정책’이라는 용어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9?11 이전 미국의 외교정책은 신고립주의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일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9?11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로 북한은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 3국 중 첫 번째로 언급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 본토의 안보를 위해 결코 이 지구상에서 용납될 수 없는 국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 미국은 이 ‘악의 축’ 개념을 평소 부르짖어 온 미제국주의 타도를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농후한 독재정권으로 정의하면서 압정에 신음하는 주민들과 그 위에 군림하는 정권을 차별화하였다. 고통받는 주민들의 해방군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악의 축 정권들에 대한 선제공격의 윤리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 첫 번째 행동으로 미국은 지난 봄 국제사회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를 침공,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진군을 거듭해 소위 ‘충격과 공포’ 전술을 만천하에 떨쳐 보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 때 북한의 김정일은 자신에 대한 미군의 폭격이 두려워 중국에 가까운 삼지연 지하방공시설 등에서 50일간 숨어 지냈다고 한다.

이제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서 세계의 이목은 더욱 더 북핵위기로 조성된 한반도의 긴장상태에 집중되고 있다. 과연 미국은 이라크 다음 순서로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김정일의 핵 공갈에 인질로 잡혀 있는 한국과 일본 국민들도 불안하겠지만, 이라크의 정예군이라던 공화국수비대가 거의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없이 미군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한 김정일로서는 가히 ‘잠못이루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찾아낸 확실한 해법 - 중국카드

김정일이 이처럼 초조하게 된 것은 비단 미국이 이라크 전에서 구사한 ‘충격과 공포’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제4세대 지도자라고 불리는 중국의 호금도(후진타오)가 중국의 대권을 계승하면서 중국 역시 핵무장을 고집하는 북한정권과 각을 이루는 모습으로 대북정책을 급선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밑으로 이 같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던 미국은 파월 국무장관이 지난 2월 말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일정에 맞춰 중국을 방문했을 때 본격적인 미?중 간 대북정책 공조합의를 중국의 새 지도부로부터 얻어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중국의 외교책임자들이 평양을 방문하거나 때로는 중국이 북한에 지원하는 중유 송유관을 일시적으로 잠가버리는 등 극한적인 방법까지 동원이 되어 중국은 미국이 원하는 대북정책 수행의 주요 카드 역할을 충실히 해내게 되었다.

북한으로서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4자회담 등 외부와의 협상테이블에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인센티브를 요구할 수 있었던 때와는 판이하게 비교가 되는 수모의 시대가 왔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중국의 배신(?) 뒤에는 미국의 대만지원 문제, 일본의 재무장 가능성, 위안화의 평가절상 압력 등 미국이 보유한 대중국 채찍들이 총동원된 집중공세가 있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중국 지도부의 세대교체와 함께 도래한 코드의 변화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바꿔 말하면 김정일은 대륙의 지각변동에 역부족으로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주변 강국의 지각변동에 눈이 어두운 것은 비단 북한만이 아니다. 장마철 도도하게 범람하는 탁류와 같이 남한사회를 휩쓸고 있는 좌경화 물결 역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아시아의 푸들을 자청하고 있는 일본의 변화에 어쩌면 이다지도 둔감한 것인지 가히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김영삼 정부말기에 거의 모든 해외언론들이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을 때에도 한국 국민들과 정부는 그까짓(?) 외국사람들의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는 배달민족의 꿋꿋한 기상을 뽐내더니 몇 달 못 가서 IMF를 맞고 말았다. 지금도 한반도 주변에서는 엄청나게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오직 한국사람들과 한국정부만은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문열씨가 7월 27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대로 “좌파 일부가 북한과의 연계를 통일염원으로 위장”시키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민족성 자체가 느긋해서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이 사회의 지도층, 지식층들이 자신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소홀한 소치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1백년 전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백 년 전에도 한반도는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주변열강들이 저마다 자국 이해를 추구하는 각축장이 되어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고종은 국내의 개혁파와 수구파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 두 차례의 전쟁을 겪어야 했고, 결국 나라는 일본사람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노무현 대통령은 386세대와 보수세력 간의 갈등을 전혀 극복하지 못하는 가운데 민생과 경제는 날로 피폐해지고 사회는 점점 더 불안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중 간의 묵계로 몽골과 중국에 탈북자 난민촌이 세워지려 하고 있고, 북한에는 중국의 지지를 받는 대체권력의 집권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으며, 일본은 미국의 정책변화에 밀착하여 아시아의 패권주자로 부상하기 위해 군사대국화의 길로 접어들었건만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짓는 회담에 참여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이러다가 백 년 전처럼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한반도의 정세가 판가름나는 일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무슨 낯으로 항변을 할 것인가. 왕따를 자청해 놓고 나서 어떻게 뒤늦게 왕따당하지 않겠다고 한반도 사안에 있어서 당사자로서의 주도권을 부르짖을 수 있겠는가.

남북관계는 미?북 관계의 종속변수라는 엄연한 현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의 종속변수일 수밖에 없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한사람들은 불구경하듯이 뒷전에 물러나 있어도 좋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가능성이 짙은 가정이지만 미국의 의도대로 라면 곧 김정일은 몰락하고, 평양에는 거의 무장이 해제된 대체권력이 들어설 것이다. 이 권력계승자는 중국이 선호하는 인물이어도 무방하다는 묵계가 물론 있었겠지만 미국도 나름대로 지분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일본의 행보가 가시화될 것이고 미국은 그 동안 극동에서 미국의 국익을 충실하게 대변해 준 일본을 지원해 줄 것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재미한인들의 역할

미국은 다원주의 국가이다. 거의 언제나 단일 옵션보다는 복수의 대안을 두고 돌발변수에 대비하는 것을 이상적인 해법으로 알고 있는 것이 미국적인 전통이다. 그렇다면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에서 일본을 앞세우는 것 말고 미국이 구사할 수 있는 복안은 무엇일까?

백 년 전 타프트-카쓰라 조약 때와는 달리 오늘날의 미국에는 시민권자들만도 약 1백만 명에 육박하는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다. 비록 아직은 이렇다할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북한문제가 미국 외교정책의 1순위로 부상하면서 잘하면 이들 한인들의 역할이 급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보다 더 먼 가정이지만 미국에서 실제로 탈북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일 경우 이들이 귀향하여 김정일 이후의 북한건설에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후 이라크에서는 아랍어를 구사하는 미국인들이 맹활약을 하고 있으나, 그 수가 부족하여 최근 국무부에서는 재외공관에 흩어져 있는 모든 아랍어 가능 외교관들을 모아 이라크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그 동안 비인기 과목으로 전락한 아랍어 및 아랍학을 부흥시키기 위한 학계의 노력도 돋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김정일 이후의 북한에서도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국인들의 인력수요가 급증할 것이고, 당연히 그 대부분의 자리는 재미한인들이 메우게 될 것이며 또 그리 되어야 한다.

미국 이민 백주년의 역사적 의미

이 때를 대비하여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1백 년 전 이민선을 하와이로 띄우셨는지도 모른다. 악의 축 김정일 독재정권이 미국의 주도로 제거되고 나면 기업활동에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예측불가능’과 ‘안보불안’이라는 악재들이 사라지고 난 한반도에 예상외로 투자자들이 몰리고 남북한 경제가 동반호황을 누리게 될 수도 있다. 미국주도의 북한재건 과정에서 남한의 경제지원과 재미한인들이 주도하는 미국의 지분지키기가 시너지효과를 내는 경우이다.

반대로 포스트 김정일 매니지먼트에 실패했을 경우, 한반도는 통일된 독일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김정일 이후에 발생할 권력의 공백을 놓고 내란에 버금가는 혼란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래저래 주변 강국들의 각축장이 될 운명이다. 이 때를 대비하여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지가 우리 민족 앞에 던져진 21세기의 큰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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