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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호

두 개의 짧지만 긴 이야기
  글·최원현 (수필가, 수필문학진흥회 이사)
하나 - 사랑 이야기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말이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말처럼 또 흔하고 많이 쓰이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어디로들 가 있는 것인지 사람들의 가슴에선 사랑이 메말랐다 하고, 정작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햇살도, 비도 좀처럼 내려지는 것 같지 않다.

그건 누구 탓도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 그리고 내 탓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실천이 없고, 해야 한다 하면서도 마음이 움직여 주질 않는다. 그건 인색함이기보다는 어쩌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강퍅함과 메마름 그리고 위기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주 가까운 내일이라는 미래마저도 그저 불확실하기만 한 현실에서 좀처럼 선뜻 손도 마음도 내밀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마을에 현자(賢者)가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좇아 그에게서 지혜로운 말을 듣고자 몰려들었다. 그런 어느 날 강가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는 갑자기 무릎까지 옷을 걷어붙이더니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이고 강바닥을 더듬더니 조약돌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 돌을 깨뜨리면 그 안이 젖었을까요, 말랐을까요?"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젖었을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말랐을 것이라고 했다. 현자는 "자, 잘 보시오." 하더니 그 자리에서 조약돌을 깨어 보였다. 강물 속에 오랫동안 있었고, 금방 강물에서 건져 올린 것이었건만 돌은 겉만 젖었을 뿐 속은 하얗게 말라 있었다.

현자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세상엔 이 강물처럼 사랑이 가득하다고 하지만 이 돌처럼 겉만 젖고 속은 말라있는 것이 아닌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 돌에서 물을 짜낼 수 없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사랑은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랑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 사랑은 겉만 젖은 돌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의 우리는 대다수가 겉만 젖어있거나 겉만 젖은 돌을 보며 넘치도록 사랑에 젖어 있다고 판단한다. 결국 사랑은 늘 부족하고 사랑에 주린 사람은 날로 늘어만 간다는 말이다. 풍요 속의 빈곤은 이 시대 사랑을 외치는 이들의 입과 눈과 귀와 그리고 마음에서도 느껴지는 공통된 현상 곧 공허로움이 아닐까 싶다. 정녕 속까지 젖을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걸까.


둘 - 부드러움의 이야기

요즘 사람들은 부드러움을 약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큰 목소리, 튀는 행동으로 조용히 있는 사람들을 바보처럼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크고 강한 것만이 센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조선시대 기호학파 학자로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6대가 중 하나였던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6년)의 시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處世柔爲貴(처세유위귀)요 剛强是禍基(강강시화기)라, 發言常欲訥(발언상욕눌)이요 臨事當如癡(임사당여치)라 하였으니

곧 "세상을 사는 데는 부드러움을 고귀하게 여기라. 강하고 힘 센 것이 도리어 화근이 되느니라. 말을 할 때는 언제나 명백히 천천히 하며, 매사에 임할 때는 어리석은 것 같이 행할지라." 함이요.

急地常思緩(급지상사완)하고, 安時不忘危(안시불망위)라, 一生從此計(일생종차계)하면, 眞個好男兒(진개호남아)라 하였으니

"급한 상황에 처해서는 당황치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며,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웠던 옛일을 잊지 말지어다. 너희가 한 평생 이러한 인생의 계략을 잘 실행해 나간다면, 진실로 호남아라 하리라." 하였다.

그저 커야 하고, 튀어나야 하는 것이 제일인 줄 아는 세상이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도 않게 들리지도 않게 자신에게 충실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귀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태풍 '매미'의 피해로 고난을 겪고 있는 현장엘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의 태풍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1년간 준비해 놓았던 것들까지 하나 없이 날려가고 떠내려가 버린 현실 앞에서 그들은 차마 울 기력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묵묵히 쉬지 않고 젖은 것을 말리고, 무너진 것을 다시 쌓고 있었다. 너무 엄청나서 손을 댈 수 없는 것은 그냥 전부터 있던 산이거니 강이거니 하고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들에겐 '사랑'이란 단어조차 호사였으며, 위태로움이라든가 당황이라든가 하는 말들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급한 상황, 위태로웠던 순간들마저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자신들보다도 자식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부모를 위해 몸과 마음에 온통 피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서 그저 부끄럽기만 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토록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사랑은 다 어디 있단 말인가. 무엇이 강함일까, 무엇이 큰 것일까, 무엇이 사랑일까, 오늘날 사랑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삶을 마치 경주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나는 길가에 주저앉아서 행복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모을 거예요. 아저씨, 저 같은 생각을 가진 철학자를 본 적이 있으세요?"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중에 있던 한 구절이 갑자기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래도 저들은 행복이 먼 훗날에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있으며,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꾸는 순간도 소중하며, 목적지에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의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챙기며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사랑,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주머니 속에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닐 것이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우리 속담처럼 사랑은 누군가에게 베풀어질 때 비로소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닐까. 가장 부드러우나 가장 강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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