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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호

남자가 화장하는 세상
  글·임이석 (테마피부과 강남점 원장)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생물은 수컷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닭이나 꿩, 공작새, 원앙만 보더라도 수컷이 훨씬 화려하고 다양한 무늬의 외양을 자랑한다. 반면 인간만은 아름다움이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이런 생각은 문화에서도 고스란히 녹아 나는데 남성을 상징하는 ?♂?표시는 전쟁 무기인 창에서, 여성의 상징인 ?♀?은 손거울의 모양에서 따왔다. 남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용맹성이고 여성의 기준은 미(美)를 가꾸는 능력과 관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에는?남성=씩씩함, 여성=아름다움?이라는 선입견이 무너지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록키, 터미네이터 등으로 상징되던 강한 남성이 부드럽고 곱게 생긴 ?꽃미남?들에게 일등남성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또 남성들이 화장을 하거나 귀걸이, 팔찌 같은 악세서리를 사용해 외모를 꾸미는 등 여성들만의 성역(性域)에 도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 10월 19일 LA 타임즈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문화 쿠데타에 시선을 집중했다. 화장하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신기한 현상을 보도한 것이다. 자신보다 더 고운 피부를 가진 남성에게 질투를 느끼는 꽃미남의 모습(남성전용 화장품 광고)부터 머리에 검은 물을 들이고 색이 들어 있는 로션으로 얼굴에 생긴 검버섯이나 잡티를 숨기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까지 두루 소개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사회가 남성들의 화장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을 앞둔 청년들은 면접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피부에 신경을 쓴다. 잘못된 피부관리로 생긴 울긋불긋한 여드름 흉터와 주근깨 등을 가려 말쑥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 한 취업사이트가 남성 미취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남성 취업 준비자들의 23%가 면접을 위해 화장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화장을 하는 것은 중년 남성들도 마찬가지이다. 경기 침체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 등으로 경제활동 연령이 점점 낮아지자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한다. 즉, ?화장하는 남자?라는 재미난 풍경 뒤에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는 남성들의 숨가쁜 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피부노화로 생긴 검버섯을 레이저로 없애달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자가모발이식으로 탈모를 치료하는 사람, 보톡스나 레스틸렌으로 주름을 없애기 위해 피부과를 찾는 남성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반면 피부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는 반대로 피부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상황은 점점 열악해 진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는데 이 두 가지 모두 피부에겐 독과도 같다. 피로가 쌓이면서 면역력이 떨어져 외부 자극에 더욱 민감해 지고 유수분의 균형이 깨어져 피부 트러블이 심화되는 것이다. 또 피지선이 자극을 받아 갑자기 여드름이 생기거나 새치, 탈모 등의 피부과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시는 술이나 담배 역시 피부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술의 주성분인 알콜은 몸에서 수분을 빼앗아 각질을 형성, 피부를 거칠게 만든다. 담배의 니코틴은 혈관을 축소시켜 피부를 검고 칙칙하게 만들고 담배를 피울 때 생겨나는 유해산소는 피부의 탄력섬유를 변형시키거나 파괴해 주름을 만든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경쟁과 변화라는 큰 물결을 헤쳐나가기 위해 화장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는 현대인들. 이들을 볼 때 의연한 자세와 현실 대처감각이 돋보인다. 하지만 잔뜩 당겨진 고무줄이 터져 버리는 것처럼 긴장과 피로, 스트레스에 휩싸여 일순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이 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년에는 경기가 좋아져서 화장했던 남자들의 숫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즐거운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 또 충분한 휴식과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로 사천만 국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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