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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호

  글·조임생 (방송대 국어국문과 졸업, <창조 문학> 시 당선, <아동문학연구> 동화 당선, 제15회 한국일보 여성 생활수기 당선, 한국 문인협회, 기독교 문인협회 회원, 시마을 시 낭송 회원이며 시집으로 ‘아직도 나는 흔들린다’가 있으며 현재 동화집 출간 준비 중입니다. 신성교회)
간밤 함박눈이 소복이 내렸습니다.
마을은 온통 동화나라입니다.
요정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곧장 눈의 여왕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퍼집니다.
반짝,
소녀의 가슴에 하얀 등불 하나가 켜집니다.

“아니야, 아니야.”

소녀가 갑자기 머리를 흔듭니다. 신작로에서 마을로 이어진, 하나뿐인 그 길이 묻혔거든요,
소녀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달그락 달그락.
할머니가 그릇 부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녀는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손엔 빗자루가 들려있습니다.
‘낼 모래가 설인데….’
소녀가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오늘쯤 아빠가 오실지도 몰라.’
눈을 쓸어 가는 소녀의 얼굴이 복숭아처럼 발갛게 익습니다.
그때,

“퍽”

난데 없이 눈 뭉치가 날아옵니다. 소녀의 어깨쯤서 부서진 눈가루가 목덜미에 튑니다.

“앗, 차거!”

그새 또 눈 뭉치가 날아듭니다. 이번엔 왼팔을 명중시킵니다.
발딱 허리를 펴며 소녀가 고개를 홱 돌립니다. 숨소리가 물결처럼 거칠어집니다.

“헤헤헤”

당산나무 뒤로 얼른 숨기는 녀석의 그림자.
소녀가 잘근 입술을 깨뭅니다.
이번엔 소녀가 눈을 뭉칩니다. 꽁꽁 뭉친 눈을 들고 녀석을 향해 달려갑니다.
녀석은 도망가다 낼름 돌아서서 혀를 쏙 내밀고 겅중겅중 망아지처럼 달아납니다.
하얀 눈밭에 발자국이 또각또각 새겨집니다.
약이 바짝 오른 소녀가 눈 뭉치를 냉큼 집어던집니다. 하지만 중간도 못 가 풀썩 떨어집니다.
이 마을에 이사온 후,
소녀는 녀석 때문에 편할 날이 없습니다. 공연히 집적대고 귀찮게 합니다.
고무줄 놀이를 해도 불안합니다.
언제 녀석이 불쑥 나타나 고무줄을 뎅겅 잘라놓을지 모릅니다.
교실에서도 일부러 다가와선 툭 치고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지난 여름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도시락뚜껑을 열자마자 후딱 튀어 오른 청개구리 두 마리!

“아악!”

소녀는 까무라칠뻔 했습니다.
남의 도시락을 까먹고 골탕 먹인 녀석은 한시간이나 복도에서 벌을 섰습니다.
그래도 녀석은 벙글벙글 웃기만 했습니다.

“아빠가 오시면 다 일러줄 테야.”

소녀는 벼르고 별렀습니다.
아빠는 광부입니다.
IMF로 직장을 잃자 아빠는 멀리 강원도로 떠났습니다.
산봉우리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선 태백산 골짜기가 일터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일년에 두 번 명절 때면 집으로 왔습니다.
지난 추석,
휘영청 달 밝은 밤 아빠는 달빛을 묻히고 돌아왔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소녀는 곤히 잠든 아빠를 보았습니다. 손톱 밑에 탄가루가 새까만 아빠의 손도 살며시 잡아보았습니다.
가끔씩 밭은 기침소리가 소녀의 가슴에 콩콩 돌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할머니는 연신 옷고름으로 눈을 문질렀지요.
사흘 뒤.
아빠는 첫차로 떠났습니다. 아빠가 선물로 사준 분홍색 블라우스는 밤마다 그리움에 젖었습니다.
눈뭉치가 또 한 개 날아옵니다.

“퍽”

눈뭉치는 소녀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힙니다. 이마가 얼얼합니다.
분한 나머지 소녀는 눈밭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곧장 참았던 울음보가 터집니다.
소녀가 엉엉 울자 녀석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슬그머니 남은 눈뭉치를 내려놓고 소녀를 향해 걸어옵니다.

“미…미안해.”

한번 울음을 터뜨린 소녀는 좀체 그칠 줄 모릅니다.
녀석은 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소녀에게 내밉니다. 소녀는 야멸치게 녀석의 손을 밀어버립니다.

“내가 눈 쓸어줄께, 울지마. 응?”

녀석이 냉큼 빗자루를 들더니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눈을 쓸어갑니다.

“쓰윽쓰윽”

눈이 좌우로 치워지면서,
길 하나가 씩씩하게 뚫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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