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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호

성경책이 있잖아요
  글·오동춘 (국문학 박사 및 시인이며, 화성교회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1990년 3월 16일 밤, 동료교사의 상가에 다녀오던 나는 밤늦게 시청 앞에서 탄 62번 좌석버스에서 거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맞이한 것이다. 갑자기 전신에 땀이 쏟아지고 배가 찢어지게 아픈 것이다.

밤 12시가 넘어서 병원을 찾아 갈 수도 없었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한 나는 구토를 하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새벽 3시경 잠이 깬 나는 배가 칼로 베이는 듯이 아파 앉을 수도 설 수도 누울 수도 어쩔 수도 없었고, 심한 고통으로 죽을 지경이었다.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화곡초등학교 뒷담을 살살 붙잡고서 간신히 걸어 행길까지 겨우 나갈 수 있었고 택시에 올랐다.

찾아간 성모병원 간호사는 눈을 부비며 귀찮은 듯이 일어나 젊은 외과의사의 지시대로 내 팔뚝에 혈관 주사를 놨다. 그런데도 구토가 멎지 않고 배의 통증은 여전했다. 집에 가지 못하고 그 젊은 의사를 다시 찾으니 항생제 주사를 엉덩이에 놔주게 하고 더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했다.

새벽 5시가 다 되어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아내와 급히 온 누이동생과 함께 신촌 세브란스로 달려 갔다. 응급실은 초만원이었고 누울 곳조차 없었다. 간호사는 땅바닥에라도 누우라고 했지만, 기가 막혔다. 아내가 세척대를 발견하고 누우라고 했다. 눕자마자 응급 환자가 오면 어쩌느냐고 내려오라고 젊은 인턴의사가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내려 갈 수가 없다고 버티었다.

나의 딸이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인 그의 아버지 도움을 청했다. 그가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주어서 곧 진찰을 받게 되었는데 병명은 췌장염으로 밝혀졌다. 불안해 하던 아내가 젊은 의사에게 이 병이 어떤 병이냐고 묻자, 낫기 힘든 병이라고 좀 절망적인 말을 한 모양이다.

아내가 땅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어쩌면 좋으냐고 사색이 되어 절망하자, 의사가 “아, 그 성경책이 있잖아요. 기도 하세요.”하는 위로하는 그말에 용기를 얻어서 아직도 자리가 없어 세척대에 누운 나를 극진히 간호해 주었다. 의사들의 긴급조치로 나의 심한 통증은 멈췄다.

2층 응급실에 자리가 생겨 나는 조용한 방으로 옮겨갔다. 우선 고통을 멎게 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물질을 빼낸다고 코에 고무 호스를 끼우고 양팔에 주사 바늘을 꽂아 나는 자유를 잃었다. 내과 입원실이 없어 외과 의사의 배려로 우선 외과 입원실 6인용 방으로 갔다. 고마웠다.

외과 환자 다섯은 순대도 사다 먹고 담배도 피우고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 아내의 간호를 받으며 심한 신음소리만 낸 것이다. 며칠 후 4인용 내과 입원실로 옮겼다. 소주를 심히 마셔 위를 버린 환자, 위암 초기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나는 당시 한양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보름만에 췌장염으로 쓰러진 것이다. 학위를 받자마자 죽는 줄 알았다. 집도 이웃들이 새로 짓는 바람에 주택은행에서 돈을 융자받게 된 우리는 집을 헐고 다시 지어야 할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집보다도 나의 생명이 더 중요했다. 아내는 세브란스 기도실에 아침, 저녁으로 가 나의 건강을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원목실 목사님, 전도사님이 자주 오셔서 기도해 주시는 사랑에 나의 병은 차도가 있기 시작했다. 19일간 아무 것도 안 먹고 영양제, 링거주사로 연명한 것이다. 식욕을 잃어서 안 먹어도 사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의 몹쓸 병인 췌장염은 다 나아가는데 초음파에 담석이 잡힌다고 담석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담석이 췌장을 누르면 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말에 너무 놀라 나는 몇 년 전에 발견한 담석증 수술을 미뤄왔는데 수술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입원실도 6인용 외과 병실로 옮겨졌다.

췌장염 치료 19일만에 또 담석증 수술을 받은 것이다. 수술대에 누운 나는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외며 수술을 기다렸던 것이다. 3시간에 걸친 수술도 잘 끝났다. 입원실에서 복도에 나와 보면 신촌 철길에 힘차게 기차가 달린다. 저 기차처럼 힘차게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연세의 뜰에 온 봄이 나무마다 파랗게 움돋고 있었다. 내가 출석하는 화성교회 온 성도들이 합심 기도해 주고 아내의 한결 같은 기도를 받는 나는 죽는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를 쏟았다. 봄처럼 새파랗게 살리라는 나의 신념은 변함이 없었다.

두 달만에 퇴원한 나는 하나님이 살려 주셨다. 그러나 담석증 수술한 배에 죽 그어진 흉터는 이등병 인생 계급장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내게 가장 낮은 이등병 계급을 배에 달아 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낮은 자로 지렁이처럼 낮게 낮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밟으면 꿈틀대는 지렁이로 주께 향한 밝은 자존심의 등불을 켜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은혜로 다시 새파랗게 살아난 나는 우리 화성교회와 그 당시 봉직하던 중 선생님들의 병 문안에 깊이 감사하며 헌신적으로 남편을 간호해 준 아내 안송희 권사의 기도와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나는 새파란 제자들을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나는 늘 푸른 건강으로 십자가의 길을 달려가면 새파란 믿음과 신념으로 힘차게 살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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