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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호

해피 엔드
  글·이옥자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펜클럽 회원, ‘현대수필’ 편집장이며, 수필집으로는 [안개는 나를 유혹한다], [열대림], [요지경 열두마당]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 생애를 처음과 같은 열정으로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양가(兩家)의 대립과 자녀문제, 애증의 파고(波高)들, 쇠잔해져가는 육체, 예고 없이 찾아드는 파란들, 무상한 인간의 마음까지. 사랑을 약화시키는 온갖 요소들 속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의 증표로 남겨질 수 있었을까.

사랑의 극치는 정사(情死)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삶의 공식에 훼손되지 않고 가장 절절한 시기에 죽음이라는 결말로 사랑을 불변화시켰으니, 비극이 아닌 ‘해피 엔드’의 결정판이 될 수 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일은 무엇일까. 행복감을 심어준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유년시절의 순간순간과 소녀시절의 애련한 단상들, 가슴에 어설픈 자국들을 남겼으나 결실에 이르지 못한 채 끝나버려 아름답게 기억되는 희미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 사이로 정다운 얼굴과 사랑스러운 얼굴, 우수 어린 얼굴들이 흘러간 영화의 주인공처럼, 내가 만들었다 잃어버린 가상의 인물들처럼 언뜻언뜻 다가섰다 스러져간다.

지나친 마음의 집착 때문에 너무 슬픈 결말로 끝나버린 일이나 가슴에 화인(火印)을 찍고 돌아선 말들, 그것은 애써 지우려 하지 않더라도 언제부터인가 내 기억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러한 자정작용으로 따뜻한 기억과 어여삐 끝낸 일들, 조금은 슬퍼도 아름답게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 추억 속의 ‘해피 엔드’만이 내 안에 저장되어 지금의 나를 낙천적인 여자로 변모시켰다.

행복은 영원성을 내포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찰나성을 인정한 때 가능해진다.
우리의 삶 자체는 장편(長篇)이다. 그러나, 그것은 연속적이거나 불연속적인 무수한 단편들의 모음집으로 사사건건, 어디에서 어떻게 결말짓느냐에 따라 우리를 부지기수의 ‘해피 엔드’속에서 살 수 있게 만든다.

장편 인간사의 ‘해피 엔드’는 결국 행복하게 죽음에 이르는 길뿐이기에, 그것만을 희구하며 살아가기에는 인간의 생명은 너무나 푸르고 싱그럽다. 일마다 만남마다 ‘해피 엔드’를 꿈꾸며 생활을 설계한다면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예술이건 순수예술이건 나는 모든 예술 작품의 결말이 산뜻하고 단호해야 좋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끝을 보자는 식의 구구절절 스토리텔링에 여념 없는 작품은 상상력을 상실시켜 아련한 아름다움을 잃어버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이 전편을 등에 업은 속편의 등장은 소설적 내용으로는 해피 엔드를 창조했을지 모르지만, 예술적으로는 그 가치를 무참히 전락시키고 말았다.

영화에서도 여운이 남는 부분이나 아름다운 순간, 극도의 슬픔 속에서 ‘The end’의 자막이 펼쳐지면, 관객은 더 큰 감동을 안고 영화관을 나서게 된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해피 엔드’라는 이상이 현실에 발목을 잡혀, 정치가는 장기집권을 유도하고, 사업가는 부(富)의 세습을 꿈꾸듯, 예술이라 일컫는 대부분의 행위에 상업성이라는 현실적 조건이 부여되듯, 예기치 않게 꼬리를 무는 모든 일들을 적절한 시기에 끝낼 수 있는 ‘해피 엔드’에는 지혜로운 결단력과 강인한 의지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해피 엔드’가 한없이 달콤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만큼 차고 쓰고 매운 두뇌와 가슴을 요구한다. 따뜻한 피돌기로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오욕칠정(五慾七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그것은 심성을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성찬을 앞에 두고는 식욕을 가누지 못해 과식과 배탈로 유쾌하지 못한 결말에 이르고, 모처럼 반갑게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내 주장을 강변하다 서먹하게 헤어지며, 좋다고 지나치게 밀착하다 미워지면 곱게 끝내지 못하고 마는 대책 없는 어리석음. 음식도 모자란 듯 식사를 끝낼 때 그 맛이 더욱 향미롭고, 좋은 말도 지나치게 많으면 없음만 못하며, 만남도 아쉬움 속에서 헤어져야 더욱 그리워진다. ‘해피 엔드’는 결국 조금 모자란 듯하여 넘치지 않을 때, 아쉬운 듯 끝낼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의 본질과 그 독성에 대하여, 사랑에 있어서 영원한 해피 엔드의 순간은 언제인가, 무상한 인생의 전모와 인간의 심사를 헤아려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명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삶의 단편마다를 최상의 방법으로 운용할 수 있는 수도자적 지혜를 지니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해피 엔드를 좇아 단호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기보다 어처구니없는 사랑에도 약한 인간이 이상적으로 희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과 방법을 창조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식욕과 탐욕, 명예욕과 애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모습이지만, 나는 인생이라는 장편의 해피 엔드만을 위하여 보편적인 욕심들을 모두 떨쳐버릴 생각도, 그럴 수 있는 자신도 없다.

설자리와 앉을 자리를 구별하고 끝내야 할 시간들을 가늠할 수 있는 예지 - 변화무쌍하게 끊임없이 전개되는 단편들의 해피 엔드를 위하여 진실과 애정을 담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여운을 깊이 남길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그때 그 순간도 참으로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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