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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호

전원생활의 실체
  글·황강연 (자연수필가이며, 강원도 양양 갈천 약수골 두메산골레서 12년간 농사를 지으며 양양장로교회 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도시의 많은 사람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전원생활에 큰 관심을 두고있는 것이 최근의 두드러진 현상임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여건만 허락한다면 언젠가 산과 물이 있는 自然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분이 과반수를 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인해 도시 인구의 농촌귀향이 크게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전국적으로 작년 한해 약 1천 600여 가구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自然으로 내려와서 텃밭을 가꾸며 조용히 살면 무척 행복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교육과 경제력 등으로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여건이 충족되어서 시골에 내려와 산다면 행복해 질까요?

결론부터 내린다면 전원생활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으로는 시골생활이 행복 되게 생각될지 모르나 그 속의 실체는 많은 갈등과 아픔을 동반한다는 사실입니다.

대개의 외지인이 시골에 내려와 정착하면 그 마을 주민들로부터 적지 않은 저항을 받게 됩니다. 물론 지역과 각 개인에 따라 받게되는 저항과 거부감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특히 이웃과 더불어 대항하거나 또는 시시비비를 따지기가 곤란한 믿음의 백성들은 남모르게 가슴 아파해야 할 때가 적지 않게 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떤 면에서는 도시의 인간관계가 훨씬 편할 수도 있습니다. 즉 도시는 이웃이 어디서 이사왔고 뭐 하는 사람인지 대체로 관심을 두지도 않고 또 참견이나 뒷말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 시골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이웃에게 거부감을 보내는 것이 보편적인 태도입니다. 물론 이런 저항적인 것은 시일과 세월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사라지지만 대체적으로 2∼3년이 고비가 되고 어느 정도 없어지기까지는 10년이 훨씬 넘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시골 사람들의 거부감은 오지로 갈수록 더 강한 면이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개화가 덜 됐다는 점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그 동안 외지인의 정착이 없었기에 ‘텃세’를 부리는 면도 강한가 봅니다.
시골 사람들이 무조건 나쁘고 인간성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회학의 이론을 빌리면 이런 유의 사람들은 대개 ‘긴장과 이완이 짧기 때문’에 외지인에 대한 저항감을 즉각 표현하므로 파생되는 심리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성격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의 도시인들은 이럴 때 너무도 당황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전원에 내려와 이웃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은 아닐지라도 뒷말이 들릴 만큼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자신을 끝까지 왜곡되게 바라볼 때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전원생활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골의 삶을 실행 할 때 이런 예기치 못한 일로 가슴아파 하지말고 미리 이에 대한 특성과 대처방법에 관한 글을 읽고 그들을 리드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진정한 전원생활에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심훈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박동혁과 채영신같은 농민운동이나 자연보호가 오늘의 시골 사람들에게는 쉽게 통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한가지라도 더 배운 이들이 자신들을 이끌어주고
지역사회를 위해서는 모두다 자연과 환경을 지켜야 한다 면서도 실제로 앞장서는 사람을 질투하므로 이상과 현실은 좀처럼 좁혀지지가 않게 됩니다.

급진적인 현대 생활의 발전이 농촌 분들로 하여금 반발과 이기심 그리고 개인주의를 부추겨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합리성을 상실시키고 있습니다. 즉 기존의 순수와 진실성으로
대변되던 시골인 들이 이제는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배금주의에 물들어 가면서 변화하는데
외부인들은 아직도 감상적인 60년대의 인심론을 생각하기에 실제의 전원생활에서는 적지 않은 갈등들이 표출된다는 것입니다.

강원의 퍼져있는 산골에는 아직도 가난하지만 아름답게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자신만을 앞세우는 몇몇 사람들의 ‘텃세’와 ‘무지한 행동’으로 인해 한 가족이 되려는 외지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적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일반적인 시골의 마을이나 산골에는 두레나 품앗이란 농업의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고 또 각 지역마다 그들만의 독특한 규칙과 규범이 있습니다. 대동인부와 동회 등 각종 강제성의 부역과 회의제도가 엄연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외지 정착인이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이런 규범을 잘 따르지 못하게 될 때는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대개의 도시 분들은 마음 편한 것이 시골의 전원생활이라고들 믿습니다. 물론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의외로 시골의 텃세나 거부반응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생각하지 않고 외형적인 아름다운 장소와 땅만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한번쯤은 반성을 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글 수는 없지만 적어도 自然속에 살고 싶은 분들은 이런 전원생활의 내면적 실체에 관한 부분도 곰곰이 대처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기독교 전원 공동체 중에서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진정 존경받는 단체가 별로 없습니다. 열심히 주변의 농민들을 전도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펼치지만 그에 대한 결실은 아주 미약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뿌리깊은 기독교에 대한 반발과 외지 정착인 들에 대한 거부와 텃세가 시골에서는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自然속에서 또는 이웃들로부터 사랑 받으며 재미있게 살고자 했던 대부분의 비기독교 전원주의자들이 시골 생활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自然이 우상이 된 삶 속에서는 결코 참 편안함과 기쁨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우상과 사신을 믿는 수많은 시골지역이 오늘날 영적으로 유대와 사마리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참 그리스도인 이라면 조용하고 편안한 이기적인 전원생활을 꿈꾸지 마시고 어떤 상처와 아픔을 받더라도 복음과 전도를 위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마22:39)는 말씀처럼 시골인들이나 산골 사람들을 포용합시다. 그것은 2∼3년 아니 10년이 걸려도 自然속에서 끝까지

그들을 이해하고 리드하는 길은 오직 주님의 사랑밖에는 다른 대안과 행복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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