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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호

임금님의 북
  글·조임생 (방송대 국어국문과 졸업, <창조 문학> 시 당선, <아동문학연구> 동화 당선, 제15회 한국일보 여성 생활수기 당선, 한국 문인협회, 기독교 문인협회 회원, 시마을 시낭송 회원이며 시집으로 ‘아직도 나는 흔들린다’가 있으며, 신성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해 뜨는 동쪽나라에 백성을 몹시 사랑하는 임금님이 계셨어요.
그 나라엔 숲이 우거지고 은빛 강이 띠처럼 흐르고 있었지요. 들판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답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임금님은 신하를 부르더니 커다란 북을 하나 만들게 했어요.
신하는 임금님의 명령대로 정성껏 북을 만들었습니다.
“그 북을 대궐 앞에 매달도록 하라.”
신하는 북을 대궐 앞에 내다 걸었어요.
“이젠 북을 치도록 하라.”
커다란 북에서는 북소리도 아주 크게 울렸습니다.
“둥둥 둥둥 둥둥둥”
북소리는 나라 안의 모든 마을에서 마을로 울려 퍼졌습니다.
“무슨 일이지?”
북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우우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마을의 아이들과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도 오셨어요.
참새와 까치와 굴뚝새도 모이고 여우랑 오소리, 사슴들도 무슨 일인가 궁금해 달려왔지요.
신하는 북을 치던 손을 잠시 멈추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러분,
이 북은 임금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마련하신 재판관입니다. 앞으로 누구든지 억울한 일이 생기거든 이 북을 울려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어요.
“임금님도 참 이상해.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게 사는 데 재판관이 무슨 소용이람.”
“글쎄 말이야. 게다가 북이 무슨 재판을 한담?”
그래도 소문은 퍼져나갔습니다.
“북이 재판을 한 대.”
“북이 재판관이래.”
참새와 까치와 굴뚝새가 여기저기 소문을 내며 날아다녔습니다. 여우랑 오소리, 사슴도 숲 속의 동물들에게 소문을 전하느라 바빴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북이 울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임금님이 나라를 잘 다스린 데다 억울한 일 따위는 없었거든요,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북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북이 울리지 않은 걸 보면 역시 백성들이 잘 살고 있기 때문이야.”
임금님은 흐뭇해 하셨습니다.
두 달째 되는 어느 날 새벽이었어요.
“둥둥둥둥둥”
요란스럽게 북이 울렸습니다.
임금님도 신하들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백성들도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도록 하라.”
포도대장이 곧 말을 타고 달려나갔습니다.
한참만에 돌아온 포도대장은 임금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누가 북을 울렸는가?”
“임금님, 북을 울린 건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숲 속의 동물들이 울렸습니다.”
“동물들이 왜?”
포도대장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사실은… 저 아랫마을의 누군가가 숲 속에 덫을 놓았답니다.”
“ 야생동물을 잡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그 덫은 반달곰이 다니는 길목에 놓였답니다. 간밤에 물을 먹으러 가던 어미 곰이 그만…”
“덫에 걸렸단 말이지?”
“네, 밤새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던 어미 곰과 그 곁에서 울던 아기 곰이 함께 잡혀갔답니다.”
“저런, 고얀 지고!”
임금님은 무척 화가 나서 용상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그 범인을 잡아 오렸다.”

포도대장은 말을 타고 숲 속 아랫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곧장 탐문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서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습니다.
포도대장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다란 곰을 잡으려면 분명히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쳤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자연히 소문이 났을 텐데 말입니다.
포도대장은 마을의 이장님을 다시 한번 불렀습니다.
‘바른대로 말해주시오. 밀렵꾼을 숨겨주면 같은 벌을 받습니다.”
“죄송하지만… 저, 저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포도대장은 이장님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몹시 당황해 하고 말을 더듬었거든요.
포도대장은 장사치로 변장한 후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할아버지, 혹시 누가 곰을 잡았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런 얘기 들어 본 적도 없네.”
“아주머니, 혹시 누가 이 마을에서 곰을 잡았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전혀 못 들었어요.”
포도대장은 할 수 없이 부하들을 시켜 마을을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을이 너무 커서 집집마다 수색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게 틀림없었습니다.
포도대장은 초조해 졌습니다.
“옳지!”
포도대장은 마을의 공터로 갔습니다. 공터엔 아이들이 모여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포도대장은 제기 차는 아이들 곁으로 갔습니다.
“얘들아, 나도 제기 차기를 잘 한단다. 한 오십 개쯤은 문제없어. 한번 해볼까?”
그러자 얼굴이 세모꼴인 아이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우린 아저씨와 안 놀아요. 우리 아버지가 낯선 아저씨와는 말도 하지말랬어요.”
“왜?”
“몰라요. 우린 아무것도 모르니 어서 가세요.”
“너희들이 놀고 있는 걸 조금만 더 구경하면 안 되겠니? 너희들을 보니까 멀리 두고 온 내 아이 생각이 나는구나.”
포도대장은 슬픈 표정을 지었어요.
그러자 키가 작고 눈이 큰 아이가 말했어요.
“형, 불쌍한 아저씨야. 같이 놀아주자.”
“안 돼, 낯선 아저씨를 조심해야 해.”
“돌쇠아저씨 때문에?”
“쉿”
포도대장은 못 들은 척 일어섰어요. 그 길로 이장님을 찾아갔습니다.
“돌쇠란 사람에 대해 말해 주시오.”
“그 사람으로 말하면…”
이장님은 푸우 한숨을 쉬었어요.
“보기 드물게 효성이 지극한 사람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한 분 모시고 살았지요. 그런데 그 어머니가 덜컥 중병에 걸렸지 뭡니까.”
“그래서요?”
“병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써 봤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농사도 팽개치고 좋다는 약초를 찾아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벼랑에서 굴러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됐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냅니까?”
“마지막으로 좋다는 약을 찾아냈는 데… 그 약을 쓴 보람도 없이…돌쇠어머니는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좋다는 약이야말로 틀림없이 곰의 쓸개인 웅담일 거라고 포도대장은 짐작이 갔습니다.
그랬구나. 그런 효자이니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돌쇠를 감싸주려 했구나.
포도대장은 며칠 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새벽이었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돌쇠네 집에서 울음소리가 터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돌쇠어머니의 장례를 후히 지내주었습니다.
장례를 치른 날 저녁, 누가 객주 집으로 포도대장을 찾아왔습니다.
‘돌쇠가 왔군.’
포도대장은 방안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돌쇠가 한쪽 다리를 끌면서 포도대장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잡아 가 주십시오.”
포도대장은 돌쇠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미안하네. 하지만 임금님도 사정을 들으면 아마 용서해 주실 걸세.”
포도대장은 돌쇠를 호송하여 서울로 왔습니다.
임금님은 포도대장으로부터 돌쇠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은실 같은 수염을 한참 쓰다듬던 임금님이 돌쇠에게 물었어요.
“그래, 새끼 곰의 쓸개도 어머니께 드렸는가?”
“임금님, 새끼 곰이 어미를 자꾸 따라오더군요. 그래서 하룻밤 헛간에 가두었다가 뒷산에 풀어주었습니다. 내 어머니를 살리려고 불쌍한 새끼 곰의 어미를 죽였으니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흐음.”
마을 뒷산에 갔던 신하가 돌아왔습니다. 새끼 곰은 다른 곰이 잘 돌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드디어 임금님의 판결이 내려졌어요.
“죄는 죽어 마땅하지만 지극한 효성은 누구나 본 받을만하다. 앞으로 열심히 살도록 하라.”
“임금님.”
돌쇠는 임금님 앞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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