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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호

고통이 주는 선물
  글·박일환 (단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영락교회)
작년 여름 기독 의료계에서는 훌륭한 기독의사 한 분을 잃었다. 그 분은 폴 브랜드(Paul Wilson Brand 1914-2003)이다. 그는 선교사의 아들로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을 마친 후에 다시 인도로 돌아와서 20년간 인도의 나환자들의 손을 수술해 주었다. 그는 나환자들의 손 재활 수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은 잘 알려져 있는데, 몇 권은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있다. 그중의 하나가 ‘고통이 주는 선물(the gift of pain)’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폴 브랜드 박사는 갈고리처럼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나환자들의 손을 재활 수술해주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신체가 갖게 되는 또 다른 고통(무고통의 고통)에 대한 통찰을 표현하고 있다. 폴 브랜드 박사는 나환자들의 손가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짧아지는 것은 나병균 자체의 영향이 아니라, 나병균에 의해 손상된 신경이 제대로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여 반복되는 상처나 압력에 의해 조직이 손상되어 결국 신체의 일부를 잃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현대의 의술은 고통(통증)의 상태를 용납하려고 하지 않는다.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면 즉시 진통제를 투여하고, 열이 나서 힘들게 되면 즉시로 해열제를 복용시킨다. 고통이 그렇게 즐거운 자극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폴 브랜드 박사는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루이지애나의 한센병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고통이 어떤 경고를 주되, 즐겁지 않은 느낌은 주지 않는 고상한 고통 체계를 개발해 보려고 연구했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실패였다. 고통이 불쾌한 느낌을 동반하지 않으면 더 이상 고통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더 이상 강제성을 띠고 경고해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 전달 체계는 신체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통증을 감지하여 어떤 메시지를 부여하고, 메시지에 따라서 통증을 선별하여 뇌로 전달한다. 또한 우리의 뇌는 전달된 통증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통은 반드시 외부 자극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혀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한 예로 하지의 통증으로 인하여 다리를 절단한 환자가 이제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수술이 끝나고 난 후에 고통은 그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서 이미 없어진 다리가 느끼는 통증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고통이라는 감각은 우리의 삶 속에서 분리할 수 없는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통을 부정하면 할수록 결국 우리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어도 자신의 육신의 고통이 나아지지 않아 새로운 느낌을 갖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고통은 떨쳐 버릴 수 없는 귀찮은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이다. 때로는 말기 암의 상태와 같은 고통은 어떤 유익을 주기보다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마음 상태를 혼란시키고 영혼마저도 고갈하게 만드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 신체는 이러한 고통을 감당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신체의 말단에서 느껴지는 통증들이 그대로 우리의 뇌로 전달되어 심한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때로는 주위의 좋은 다른 자극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 수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체 말단의 통증이 선별적으로 뇌로 전달되는 것이다. 또한 어떤 통증에 대하여 우리의 뇌는 전달된 통증 자체를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흔히 경험하는 가짜 약 효과가 이런 예가 된다. 아무런 효과도 없는 가짜 약을 주었는데도 마치 진짜 진통제를 준 것처럼 통증이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뇌는 전달된 통증에 대하여 상당히 효과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고통을 선물로 이해한다는 것은 역설적인 면이 있다. 더욱이 매우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매일매일 진통제에 의지하여 살아야만 하는 환자에게는 이런 표현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고통이 주는 불쾌한 기억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고통은 느끼지 않을수록 좋은 느낌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적 관점의 지배적 영향에 의하여 우리가 고통이 주는 좋은 점(유익)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통은 우리를 힘들게만 만드는 느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 몸을 위한 유익이 담겨져 있다. 고통은 우리 신체에게 적절한 불쾌감을 조성하여 우리 신체가 위험한 상태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경고자의 역할을 한다. 또한, 고통은 우리의 내면 세계를 반영하는 창문의 역할을 한다. 우리 신체가 느끼는 고통은 우리의 내면의 외로움, 두려움, 분노감 등의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고통의 시기에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고통은 우리 신체가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작은 언덕이 된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신체가 결국 손상되듯이, 고통이 없는 삶은 무너지게 된다. 고통이라는 장애물이 있을 때에 우리는 고통의 언덕을 넘어, 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도약해 갈 수 있다. 결국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보다 큰 에너지를 발휘하게 하고, 새로운 일에 몰두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고통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이 지혜롭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통증은 위험한 것이라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고, 통증이라는 감각과 꽤나 분리되어져 있다. 밖에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신발을 신어야 한다. 맨발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는 모든 통증의 감각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감각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통증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치 않은 경험이다. 그러나 통증과 더불어 사는 삶에 적응해 보면 통증이라는 감각은 조절될 수 있는 감각이 된다. 우리의 뇌는 신체가 느끼는 통증의 감각을 선별하고 수정하여 느낌으로써 통증의 감각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고통은 더 이상 무가치하고 해로운 대상은 아니다. 때로 고통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도 한다.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고통의 삶 속에서 고통과 더불어 살며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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