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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호

진료실 풍경
  글·안일남 (경찰병원 정신과 과장. 영롱청각장애인 선교회 회장. 영락농인교회)
요즈음 응급실에서는 “의사선생님 뵈러 왔어요”하는 이야기가 듣기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가족들끼리 이야기 할 때도 “의사 있냐” “아니 없어, 새파란 의사 몇 명만 있어, 아마 인턴인가 봐” 하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의사를 부를 때 “아저씨” 또는 “아줌마”하는 소리를 아무런 느낌도 없이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겠다고 공부하는 학생도 있고 아직도 신랑감으로 의사를 찾고 있는 딸을 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이러한 모습은 진료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사에 대한 양극화된 평가는 사회적 혼란과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다주고 있으며 실제로 임상을 접하고 있는 의사들의 태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며 환자 및 보호자가 의사를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상은 타과와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신과의 경우 대부분의 환자를 예약제로 보고 있고 있어서 대다수의 환자들은 자신의 예약시간에 와서 진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간혹은 예약시간보다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예약환자가 진료를 받고 있고 다음 환자가 대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늦게 온 것에 대해서는 미안함도 없이 멀리서 왔기에 꼭 약을 타가야 한다고 접수에 있는 간호사에게 억지소리를 하여 간호사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일은 같이 온 보호자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입니다. 환자의 이야기는 환자라고 생각하여 잘 들어주면 보호자가 이 애는 괜찮다고 하거나 문제가 없다고 하고는 입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데리고 가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득하여 입원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설득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내 아이는 내가 더 잘 안다고 하며 데리고 가서는 몇 개월 정도 지나서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급하게 환자를 데리고 와서는 입원을 시켜 달라고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 당시 입원을 하였더라면 지금쯤은 증세가 좋아져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받고 또 웬만한 일은 잘 할 수 있을 상태가 되었을 텐데 보호자가 억지를 쓰는 바람에 환자도 고생하고 보호자도 고생하는 경우가 됩니다.

어떤 보호자는 군에 입대할 때는 멀쩡(?)했는데 군대가서 아들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환자를 예전처럼 고쳐놓으라고 소리를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대 직원이 무슨 큰 죄를 진 것처럼 죄인 다루듯이 하며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심한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환자가 군대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소상히 알아보아야 하겠지만 환자는 아무 말도 없고 보호자만 소리소리 지르는 진료실의 상황은 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인지 싸움을 말리는 사람인지 착각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또 다른 양상은 경미한 질환으로 내원한 환자 중에는 군복무를 하면서 일정기간 치료를 받으면 잘 지낼 수 있을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환자나 혹은 보호자가 의가사제대를 원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결국에는 국군통합병원에서의 최종 판정을 받아야 하지만 대개는 치료를 받아보라는 판정을 받기가 쉽고 바로 제대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다른 질환과 함께 병이 있는 경우는 참작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오히려 그 정도의 증상이면 제대가 가능한 경우에 있는 환자나 보호자는 제대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잘 치료하여 군대에 갔다 왔다는 기록이 남기를 원한다며 열심히 치료받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대가 가능하다고 하여도 군에 열심히 복무하겠다는 환자와 이 정도면 제대가 어렵다고 하여도 정밀 신체검사를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경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특히 부모의 태도와 자신의 성격상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어려서의 가정교육이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병을 의사가 다 고치는 것이 아니고 또 병이 다 낫는 병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병에 대한 태도는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대상자로는 어머니를 꼽을 수 있는데 어머니가 어려서 자녀에게 병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심어주는가 하는 것이 자녀가 병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끔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환자보다 어머니가 더 문제가 있음을 간혹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바로 병에 대한 태도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보호자가 따라온 것도 아니고 보호자 자신이 병식(病識)이 없기 때문에 진료를 하거나 설명하기가 어려운 경우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

요즈음 유난히 자살이 많고 의처증, 의부증 환자가 많으며 성격장애에 의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될 문제는 부모교육입니다. 즉 부모교육을 충분히 받고 부모가 될 준비를 한 연후에 자녀를 양육하여야 건강한 가정을 이루며 자녀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양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자녀밖에 낳지 않은 가정이 늘어가면서 자녀를 과잉보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점검하면서 과잉보호를 해 주는 것은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가 절실히 느껴 사회에 나와 다른 사람과 같이 생활하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인격체로 양육하는 부모의 마음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내 자녀만 생각하는 태도는 결국 다른 자녀의 문제가 바로 내 자녀에게 직격탄을 쏘게 되는 환경을 만들며 많은 학생들이 왕따 문제로 고민하며 불량청소년 집단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고 조화와 협동을 할 수 있는 가치를 가정에서부터 가르쳐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진료실에서의 대화를 들으면서 전과 달라진 가치관의 차이와 진료실에서의 환자 보호자의 태도변화를 생각하며 그래도 의사들은 환자생각에 많은 고민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환자는 상품적 가치로 병원의 시설과 건물 그리고 의사의 기술에 대한 생각을 하며 병원을 찾아오는 면은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의사들이 데모를 하며 거리로 나가게 만든 현실을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묵묵히 소외 받고 있는 이웃을 무료로 진료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거나 또 멀리 외국에 가서 이름없이 그곳 원주민을 진료하며 여생을 보내는 동료 및 선배의사들을 생각할 때 과연 우리 후배들에게는 어떠한 진료를 하라고 이야기해야 되는가 스스로에게 반문해 봅니다.

앞으로 의료개방이 되고 외국과 우리나라의 의료가 적나라하게 비교될 때 과연 우리는 어떤 진료를 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도 의료계의 관건이며 또 소비자의 입장에서 외국의 기술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 비싼 의료수가를 체험하고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가도 궁금합니다.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미달인 상태에서 몇 년 지나면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는 누구 손에 맡길 것인지 예측이 안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왜 공과대학까지 나와 다시 의과대학을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의사의 소박한 꿈은 환자를 열심히 보면 열심히 본 의사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환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항생제 내성이 세계 일위라는 이러한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만 현상태로 보아서는 요원한 일인 것처럼만 느껴집니다.


옛날 시골에서 자신의 병을 치료해 주면 치료비 대신 집에 있던 조그만 국광사과를 가져와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주고 가던 어느 할머님의 마음이 갑자기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도 예약된 환자들을 보면서 우리가 옛날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언젠가는 갚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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